겹겹의 시간_Layered Moments

김미경


2020.10.08() - 11.14(토)​


시인의 하늘과 어머니와 그림 그리는 이의 마음과

진실한 행위에 대하여                                                                                                                                                                                                                                                                                                                               안소연 미술비평가

신중함, 어디에서 내 마음에 이 세 음절의 단어가 들어와 무엇 때문에 여태 남아 있는 걸까. 우리가 마주했던 시선에서, 주고 받은 목소리에서, 그 대화에서, 혹은 크지 않은

​몸짓들에서 알게 된 것일까. 아니면 덮개를 걷어낸 그의 그림이 눈 앞에 천천히 펼쳐졌을 때, 나와 그림 사이의 공백을 천천히 느리게 통과했던 내 경험이었을까.

​그의 그림 속 한 자리에 서서 가늠해본 누군가의 고독, 고립, 침묵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앞에 없는) 그의 그림을 기억으로부터 다시 떠올리면서, 그를 동시에 생각하며,

​그의 시간과 그의 공간을 상상한다. 김미경의 그림은 우리 앞에 홀로 자기 처소를 만들어내는 선명한 존재가 아니며, 공백과 부재, 고립과 고독을 구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장소로서의, 텅 빔으로서의 (흐릿한) 형상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흐릿한 형상을 나는 표면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의 그림은 표면에 드러난 것을 보기 위한 진부함으로부터

​벗어나 감추어진 것, 비워진 것, 멀리 사라진 것에 대해 알아차리는 신중하고 느린 경험 안에 놓여 있다. 가득 찬, 흐릿한 표면 때문이겠지. 그 표면의 응시를 뚫고 나올 것

부재에 대한 기다림, 장차 불가능한 것의 도래를 붙들고자 하는.


Being patient greenly , Mixed media on linen,  22.5x27.4x4.4cm, 2019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김미경의 그림은 어떠한 표면들로 감싸여 있다. 그것은 2차원의 수사로 물든 여느 회화처럼 물질로 꽉 찬 평면을 내세우기 보다는, 차라리

​(이름 없는) 임의의 어떤 물질을 감싼 표면으로 보이도록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을 다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김미경은 “진정한 바라보기”라고 말했다. 진정한

​바라보기가 되었을 때 사물의 진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자연의 위대함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다. 갑옷 속에 감춰졌던 속내가 올라오는 순간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빛과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상징과 은유이다.[작가노트中]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가 검은 회화를 그리기 위해 수도사처럼

​검은 옷을 입고 허리를 깊이 숙여 검은 색을 캔버스 표면에 길어 올렸던 추상적인 사건을 떠올려 보면, 김미경의 말 속에 출현하는 진정한 바라보기의 소명은, 짐작해 보건대

검은 그림을 본다는 것의 불가능과 마주함이다. 보는 것과 마주하는 것. 말하자면, 어둑함/흐릿함(the dim) 속에서 나타나는 검은색의 현전을 대면하는 것이고, 동시에

​장막을 드리운 것 같은 검은 화면으로부터 일체의 어둑함-본다는 것의 불가능-을 걷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 안에 출현하는 그리드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보자기에서 나타난 경계이고 색채이며 형상이자 움직임이다. (무엇이어도 상관 없을 테지만) 같은 크기의 그림

​<One dot Ⅰ>(2018)과 <Being white>(2018)를 함께 놓고 보면, 그림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사각형의 흔들리는 경계와 미묘한 조정 및 착시를 일으키는 흰색

​혹은 회색이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추상의 감각과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 어떤 분위기를 쏟아낸다. 아, 쏟아낸다는 말은 틀린 것 같다. 바깥으로 밀어낸다.

​이때, 그것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애초에 상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함께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분위기”라는 게 있을까.)

​다만, 색채 아래 감추어져 있는 어떤 분위기를 기억해내고 상상해내려는 그 행위의 순수한 경험과 그것에 대한 상징과 은유로서의 그리드가 우리의 “진정한 바라보기” 안에

​서 임박하게 출현을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나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 “시선을 열기 위해 눈꺼풀을 닫는 내밀한

​행위”에 대한 예시를 들어 가시성의 박탈을 집행하는 (작품/오브제의) 행위의 순수한 권능에 대해서 서술했던 세밀한 언어들을 떠올렸다. 그의 표현대로 “시선 자체에 관여하는

후퇴와 임박함의 장소가 되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행위가 불러오는 (순수한) 지각의 열림 같은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김미경의 그리드는 후퇴와 임박함, 닫힘과 열림의 행위를 이끄는 장소를 만든다. 그가 보자기라고 말했던.

​ <One dot Ⅰ>과 <Being white>는 김미경의 행위, 즉 그림을 그리는 이의 제스처를 또 다시 나타낸다. 그 제목 또한 그러하듯, 한 개의 점에서 그어진 흰색 직선의 흔적과 흰색이

되기 위해 얇게 여러 번 쌓아 올려진 사각형의 중첩이 한 사람의 몸짓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손과 두꺼운 무릎에서 시작된 엄숙하고

느린 몸짓이 그림의 표면에 닿아 가늘게 흔들리는 연필선과 신중한 떨림의 붓질을 만들어 놓았을 때, 우리는 거기서 불가능한 바라봄을 견디며 예측하지 못했던 빈 곳의 열림을

경험한다. 숭고라고 말해도 좋을. 그런 의미에서, 김미경의 그림 앞에서의 나의 경험은, 다른 시간 속에 현존했던 몸의 움직임과 그것이 축적해 놓은 숱한 그리드의 실체-경계,

색채, 형상, 움직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말했던 것처럼, 보자기의 메타포로 안무적 형상과 의미를 구축한다.


One dot I, Mixed media on linen, 46x53x4.3cm, 2018 
Being white ,Mixed media on linen, 46x53.3x4.2cm, 2018 

그의 그림 안에 출현하는 그리드가 보자기에서 나타난 경계, 색채, 형상, 움직임에 대한 상징과 은유임을 앞서 말했다. 김미경이 오랜 시간 동안 사유해 온 보자기의 그리드는,

감쌌다가 펼쳐지고 그 모서리의 경계가 수없이 맞닿아 떨어졌다 연결되며 평면에 공간(의 형상)을 감추었다가 또 다시 드러낸다. 그는 이 보자기의 순수한 역설을 추상적 그리드

및 기하학적 사각형으로 전환시켜 그것이 매개하는 “진정한 바라보기”의 역설로 사유를 옮겨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김미경은 안료나 물감에 미디엄을 섞어서 만든 섬세한 색으로

기하학적인 추상 회화에 오랫동안 몰두해 왔다. 그의 그림이 기하학적 형상 안에서 미세한 파동처럼 일으키는 흐릿한 톤의 변화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나 시선이나

조용한 손짓과 별개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내게 “닮음”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작업의 과정에서 그가 혼자 겪게 되는 (언어의/형태의) 부재에 대한 또 다른 역설을 내포하기

때문일 텐데, 그는 그리드 안에, 혹은 그 색채의 표면 안에 놓인/갇힌 사람처럼 그것의 행위를 함께 수행한다.


​      색으로 가득 찬 그 표면을 보면, (붓 대신) 주걱 같은 넓고 평평한 도구를 사용해 색면을 쌓아 올린 행위의 흔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물감을 섞어서 아주 얇고 평평하게 펴 바르며

같은 형태를 쌓아 올리는 이 반복적인 행위는, 그리드의 경계선을 향해 물감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표면 저 편에 있는 어떤 부재를 흐릿하게 덮으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드가 하는 일을, 그가 한다. 흐릿한 그림, 혹은 텅 비어 있는 그림, 그리고 경계를 계속해서 흔드는 색채의 표면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현존의 경험은 그것

때문인 것 같다. 그러한 이중의 수행적 사건이, 느린 시간 속에서 의미와 형태를 지연시키며 반복되는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주관적인 경험들을 추상적인 감각의

조형 언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이 역동적인 미학적 실천의 과정 안에서, 매체와 공유하게 되는 “보기의 경험”과 “상실의 경험”이 관계 맺는 역설에 대한 “진정한 바라보기”를

(불가능한) 저 “먼 것”의 나타남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시간의 간극과 그것의 지연을 한없이 감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겹겹의 시간⟫에서는, 그가 시간에 대해 인식하고 사유해 온 관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이 (흐릿하게) 포함되어 있다. 흐릿함은 느림과 신중함을 유도하기에,

​흐릿한 단서들을 알아차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미경의 그림이 자기를 현시하는 것처럼, (시각적 부재의) 흐릿함이

​유발하는 신비한 마술적 현존은 그 느림과 신중함을 목격하는 바라보기의 진실한 행위로 나타난다. 그는 이 “행위”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보자기의 행위이자 그리드의 행위이고

그것을 그리는 자기 자신의 행위를 말한다. 또한 자기 자신은 타인을 포함한다. 김미경은 보자기에서 발견한 그리드로 숱한 사각형을 그림에 출현시켰고,

​그 회화적 행위가 타인의 몸에서 다시 삼각형을 찾아냈다. 그것은 어머니에서 시작됐고, 또한 한 예술가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수행과 명상의 행위에서도 나타났다.

        2016년부터 시작한 <윤동주의 하늘>(2016-2020) 연작은 김미경의 그림 특유의 그리드와 그것이 함의하는 부재의 시간과 부재의 장소에 대한 응시를 환기시킨다.

​사각형에 있어서 크기와 가로 세로의 방향을 조금씩 서로 달리하는 캔버스들이 수평으로 서로 맞닿아 길게 이어져 있으며, 그림 안에서도 큰 파동 없이 그리드를 품고 있는

​윤동주의 하늘은 마치 정지된 것처럼 (사각형에 갇혀) 연결되어 있다. 윤동주의 하늘은, 죽음의 직육면체 안에 영영 갇혀버린 시인 윤동주를 위한 그림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영영

볼 수 없음을 함의하는 <윤동주의 하늘> 연작에서, 김미경은 부재의 장소로서의 그리드를 경험 시킨다. 우리에게 부재하는, 윤동주의 하늘, 그것이 장소로 나타나는

순수한 역설로서의 추상적 그리드를. 따라서, 반복되는 그리드는 죽은 시인의 마음과 김미경의 마음을 시간의 간극 너머로 희미하게 연결하여, 한 사람의 부재에 대한 애도와 삶에

대한 깊은 경의가 그리기의 행위와 맺게 되는 지속적인 관계 안에서 함께 경험된다.


Yoondongju’s sky series, Mixed media on linen, 18x26cm, 2017 
Yoondongju’s sky series, Mixed media on linen, 18x26cm, 2017 

  삼각형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다. <Unfinished letter>(2005)는 같은 시기의 작업들 안에서,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며 찾아낸 추상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캔버스 가운데에 숫자 1,2,3을 연필로 반복해서 써내려 가면서, 그는 자식 셋을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의 일생에 대해 생각했다. 텅 비어 있는 어머니의 삶, 동시에 일체의 부재를

가로질러 좁고 흐린 통로를 만들어낸 어머니의 충만한 시간, 그것을 그는 일련의 그리드처럼 형상을 끊임없이 밀어내며 쌓아 올리는 행위로 사유하여, 삼각형에 가까운 흐릿한 면들

을 그림의 표면에 출현시킨 것이다. 그의 말대로, 불면 다 날아갈 것처럼, 그러한 부재를 끌어 안고 있는 어머니의 삼각형이 그의 그리기 행위와 겹쳐지는 의미심장한 경험을

내포하면서 말이다.

한편, 그의 그림에 더러 나타나는 노란색 그리드와 채색된 삼각형은 볼프강 라이프(Wolfgang Laib)가 텅빈 공간을 충만하게 채웠던 꽃가루 설치 작업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유에서

비롯됐다. 텅 빈 장소, 부재의 적막함을 가로지르는 라이프의 수행적 행위는 그가 텅 빈 캔버스를 눕혀 놓고 연필 한 자루로 숫자 1,2,3을 한없이 반복하며 써내려 간 행위와 닮아 있다.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사라짐에 대한 불안을 움켜쥐고, 하나 뒤에 다른 하나의 숫자와 입자가 서로의 형태를 계속해서 지탱시켜 주는 이 삼각형의 기하학적 구조는, 그에게 삶의 모든

허무를 감싸고 있는 텅 빈 그리드의 미학적 순간을 가로지르게 한다.

Unfinished letter, Mixed media on wood panel, 61x61x3.5cm, 2005 

   <Human forest Ⅳ>(2020)는 그러한 찰나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건널목에 서 있는 사람들, 광장에 모인 사람들, 함께 연대해 있는 사람들이 어떤 순간 부재의 장소에서

만들어내는 그리드의 출현에 대하여 김미경은 <Human forest> 연작에서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노란 민들레 씨앗 한 움큼이 만들어내는 연약한 피라미드와도 닮았고,

죽은 시인의 시 안에 고립되어 있는 한 사람의 마음과도 닮았으며, 텅 비어 있는 어머니의 충만한 삶의 역설과도 닮아있는, 추상적인 그리드의 현존과 그것에 대한 진실한 바라보기의

행위를 공유한다.

 Human forest IV Mixed media on linen 131x162.5x4.3cm 2020 

드로잉룸 갤러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2020 Korea Art Week에 온라인 VR 전시장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지금 전시중인 겹겹의 시간_김미경 개인전 전시를 직접 공간에서 관람하듯 친절한 오디오 설명과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 링크를 클릭하시면 이번 전시를 VR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도 함께 올라와 있습니다.


http://artweek.kr/2020/vr/01.php?idx=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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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Yang 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