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원, Generic landscape2 001, 2019, Inkjet print, 140×186cm 


장태원, Generic landscape2 034, 2019, Inkjet print, 117×156cm 


장태원, Remains 003, 2016, Inkjet print, 110×146cm 


장태원, Remains 041, 2021, Inkjet print, 180×120cm 


장태원, Remains 016, 2016, Inkjet print, 120×160cm 


빛, 시간, 그리고 사진의 진화


류동현 미술비평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1837년 다게르가 은판 사진술을 완성한 이후 20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19세기 이래로 벌어졌던 사진과 회화의 경쟁에서 사진이 이렇게 완벽하게 승리하리라고 말이다. 과거 같은 링에서 싸웠던 사진과 회화는 이제 완전히 다른 길로 갈라서고 말았다. 물론 사진은 회화가 자리잡았던 예술의 영역까지도 뻗어나갈 정도로 승리했고.

 

21세기도 거의 사반세기가 흐른 현재, 이제 사진은 우리의 삶 속에서 뗄 수 없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기존 사진기 사진의 승리는 아니다. 이른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러지의 승리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는 사진기 기능이 들어있다. 세계 거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린 제품 광고에서 사진 기능을 다섯 순위 안에 들어가는 주요 성능으로 강조하고, 더욱 집요하게 홍보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 성능의 발전과 함께, 탑재된 사진 기술력이 더욱 좋아질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건다. 과거 필름이나 나아가 디지털 환경으로 변신을 꾀하면서 새로운 부흥기를 노렸던 기존 사진기 메이커들의 몰락과 변신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세상의 SNS는 과거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모든 일상은 각자 찍은 사진으로 공유된다. 세상 곳곳이 사진으로 넘쳐나고 있다. 가히 ‘사진의 시대’라고 선언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사진은 빛과 시간의 상호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빛은 사진이 존재할 수 있는 기본 요소다. 여기에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이 개입되면서 사진은 촬영자의 의도를 수용하게 된다. 장태원은 이 사진의 속성에 주목한다. 2024년 1월 30일부터 2월 22일까지 서촌 드로잉룸에서 열리는 전시 《Skin of Objects》는 작가가 지금까지 고민했던 사진의 속성과 이에 대한 탐구, 새로운 모색에 대한 발언의 장이다. 작가는 2011년 벌어진 동일본대지진 시기부터 2021년까지, 10년 간 제작했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업세계를 펼쳐놓는다. 꽤 오래 전 필자는 작가와 작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후 이번 작업의 결과물은 좀더 깊어지고 변화된 작업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탐구에 좀더 집중하면서 사진이 보여줄 미래에 대한 문제를 이번 전시를 통해 제기한다.

 

빛과 어둠의 양가성

이번 전시에는 <Generic Landscape>과 <Remains> 시리즈 17점이 출품되었다. 이 두 시리즈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빛과 시간이라는 속성에 대한 상반된(그리고 극대화된) 접근의 결과물이다. 먼저 <Generic Landscape>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작업이 시작되었다. 미국에 체류하던 작가는 동일본대지진 소식을 듣고 일본 현지로 떠났다. 당시 진행하고 있던 <Stained ground> 시리즈가 인간이 파괴한 환경에 대한 문제를 보여주었다면 동일본대지진은 환경이 인간을 순응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본 풍경은 처참했지만, 결국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풍경은 그 처참함과는 달랐다. 이른바 대상에 대한 선택과 구도, 색감이 기존 사진 예술에 걸맞는 ‘에이컷’ 작업이다. 이렇게 고른 구도와 색감의 작업은 작가에게 현장의 상황과는 다른 ‘진부한 풍경(Generic Landscape)’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Generic Landscape>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Generic Landscape>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육안으로는 분간을 할 수 없는 야경을 찍는다. 그러나 촬영된 결과물은 밝다. 긴 노출 시간을 이용해 어둠 속에 있는 약한 빛을 최대한 받아들인 결과다. 이렇게 도출된 풍경은 흡사 ‘밝은 밤’의 풍경처럼 깊이감 있는,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다가온다.

 

사진의 매체성에 좀더 집중한 것이 <Remains> 시리즈다. 작가는 어둠을 빛으로 채운 <진부한 풍경>과는 달리 이 시리즈에서는 대상과 대상 주변의 배경을 빛으로 채워 같은 대상을 수십 컷을 찍은 후 하나의 화면으로 레이어를 통합한다. 빛으로 채운 화면은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빛이 제거된 효과를 얻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면은 평면성(flatness)이 강화되면서 균등해진다. 과거 인상파의 캔버스가 물감을 통해 표면의 균질함을 획득하고, 이로써 3차원의 환영을 2차원의 물질성으로 변환했듯이, 작가의 작업은 축적된 빛의 레이어와 그 플랫함을 통해 오히려 사진의 물성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빛과 시간이라는 속성을 이용해 서로 다른 화면, 특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두 시리즈는 게리 위노그랜드가 “나는 사물이 사진에 찍히면 어떻게 보일지 알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라고 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 지 알 수 없었다. 빛과 시간이라는 속성만을 이용해 어둠과 빛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사진의 하드웨어적 특징이나 속성의 특성이 사라진, 화면 속 오브제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사물의 껍데기’인 이유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재현과 기록의 의미로서의 사진의 의미를 넘어선다. 사진기가 찍든, 스마트폰이 찍든 우리가 가지고 있던 광학 시스템 속의 사진적 의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장태원의 작업을 통해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속 사물의 껍데기

길 위에 배가 비스듬히 서있다. 파괴된 마을 속 좁은 길 한 가운데다. 어둡지만 밝은, 이율배반적인 풍경 속에서 배와 파괴된 동네는 흡사 꿈의 세계처럼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아름답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보게 되는 작품 <Generic landscape 005>(2011)이다. 전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상황을 포착한 <Generic landscape>에서 시작한다. <Generic landscape>은 이후 복구된 후쿠시마 지역의 촬영으로 이어지는데, 2019년 작품들은 쓰나미를 막는 벽이나 복구요원들의 숙소 등이 담겨있다. 그 맞은 편에 전시된 <Remains> 시리즈는 회화적이지만 이와는 또다른 질감을 드러낸다. 흡사 메리 카사트의 그림 같은 <Remains 013>(2016)이나 앙리 마티스의 색종이 작품 같은 <Remains 035>(2021)를 비롯해, 실제 대상이 빛을 통해 새로운 색감과 형태로 변주된 대상 혹은 오브제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Remains 016>(2016)과 <Remains 004>(2016)는 인물 초상으로서의 사진과는 다른 독특한 질감과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결과다.

 

필립 퍼키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 정신, 문화를 변화시켜 온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공백 상태를 만들어내는 문화의 속성 때문에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기술이 발전해 온 것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대단히 흥미로우며 늘 주시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1 작가는 이를 옆에서 주시하지 않는다. 직접 사진에 관한 기술과 문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문제에 뛰어든다. 직접 부딪히고 그 결과를 살펴나간다. 특히 작가는 사진이 급속도로 사회 속에 확산되었던 지난 10여 년 동안 사진이 가지고 있는 형식과 의미가 제대로 사람들 속에 안착하지 못했음을 인지하면서 사진의 미래에 대해 모색한다(작금의 현실은 사진을 넘어 3D와 VR의 세계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도상, 그 도상을 드러내는 미적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작가가 사진이 사진이 드러내는 감성적인 내용이 아닌, 형식적이고 매체적인 부분에 천착하고 있음을 이야기 했지만, 작가가 지금까지 찍은 대상, 남겨진 ‘에이컷’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로테스크하면서 눈길을 잡는 무언가가 있다. 이는 결국 작가의 훈련된 심미안, 미적 감각이 우선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일 게다.

 

앞으로 사진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남을 것(remain)인가? 장태원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변화는 양가적이다. 빛과 어둠, 영겁과 찰나,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장식적인 것과 그로테스크함, 사진과 회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기술과 문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이 모든 것이 장태원의 작품 속에 공존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장태원 작업이 드러내는 다양한 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사진의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1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p.36, 눈빛,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