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ny and Irony

Yang Jung Hwa


2021.10.07(목) - 11.06(토)​



Black Matters

이성휘 (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


“삶과 죽음은 붙어 있다.” - 양정화, 그리고사람들


양정화는 흑연, 목탄, 콩테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주로 모노톤 계열의 드로잉을 해왔다. 검정색을 지닌 이 재료들은 지구상의 생명체가 생을 다한 뒤 (탄소)유기물 형태로 잔존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건식재료로 분류되는 이 재료들은 작가의 제스처를 캔버스나 종이 위에 가장 정직하게 전사시킨다. 습식재료들과 비교했을 때 재료의 단단함과 무름의 정도가 캔버스 위에서 작가의 행위와 감정을 과장하거나 줄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료의 직접성을 선호하는 작가는 드로잉을 그리고 지우고 덧그리는 행위를 하면서 이미지를 촉발시킨 기억의 정체, 끊임없이 소환되는 낯선 감각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기억과 대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현재로 소환되는 기억은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고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 역시 일부는 재현 불가능성을 수반한다. 따라서 양정화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불확정적인 형상을 주로 그려왔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구체적인 지시 대상이나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는 <Untitled>나, ‘Metamorphosis’, ‘Floating’과 같은 몇 가지 부제가 붙는 형식을 사용한다.

  양정화가 이번 드로잉룸 개인전 《Ebony and Irony》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근작인 심장 드로잉 시리즈에서 선택한 작업 선택한 작업<Untitled Floating>, 최근 제주도에서 작가가 경험한 자연이 주는 두려움에 대한 작업 <Untitled Moment>, 그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숙고를 보여주는 스컬 시리즈들<Untitled Portrait>로 구성되었다. 이 작업들을 통해 현재 양정화는 죽음을 직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끝없이 환기되는 기억과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죽음의 직시와 공존


인간을 두렵게 하는 대상 중에 죽음만큼 큰 것은 없다. 이 죽음을 직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양정화는 최근 작업들을 통해서 죽음을 직시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간 작가는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나 주변인들, 또는 사물로부터 문득 생경함을 느낄 때 이 생경함을 떨쳐내기보다는 대면하여 파악하고자 애써왔으며 그 노력을 고스란히 작업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대체로 생경함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현재의 우발적인 상황과 오버랩되면서 찾아오는 심리이자 감정이다. 작가는 “과거의 어떤 기억들이 현재의 경험과 공명하면서 갑자기 회귀 되곤 하는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기억은 매번 회귀될 때마다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재생된다.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변주는 그리고 지우고 또 덧그리면서 계속 변형하는, 또는 무의식적으로 변형되는 형상과 연결된다. 나의 심리를 자극하는 이미지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소환되는 기억의 정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즉, 작가는 기억 속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또는 당시의 심리나 감정을 과장하고 증폭시키기 보다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기억의 속성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지난 봄에 열었던 개인전 《블랙 풀(Black Pool)》(챕터 투, 2021)에서 ‘심장’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을 선보인 바 있는데, 심장이 생명의 시작과 끝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평생 반복운동을 지속하고, 동시에 심박수의 증감을 통해 감정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였다. 이를 드로잉으로 풀어 나갈 때 작가는 신체 기관의 형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심장이 연상시키는 생명 에너지의 확산과 이동, 박동과 긴장을 내포한 이미지를 그렸다. 이러한 추상적인 사고를 이미지화 하면서 작가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음의 직시와 공존


인간을 두렵게 하는 대상 중에 죽음만큼 큰 것은 없다. 이 죽음을 직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양정화는 최근 작업들을 통해서 죽음을 직시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간 작가는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나 주변인들, 또는 사물로부터 문득 생경함을 느낄 때 이 생경함을 떨쳐내기보다는 대면하여 파악하고자 애써왔으며 그 노력을 고스란히 작업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대체로 생경함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현재의 우발적인 상황과 오버랩되면서 찾아오는 심리이자 감정이다. 작가는 “과거의 어떤 기억들이 현재의 경험과 공명하면서 갑자기 회귀 되곤 하는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기억은 매번 회귀될 때마다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재생된다.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변주는 그리고 지우고 또 덧그리면서 계속 변형하는, 또는 무의식적으로 변형되는 형상과 연결된다. 나의 심리를 자극하는 이미지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소환되는 기억의 정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즉, 작가는 기억 속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또는 당시의 심리나 감정을 과장하고 증폭시키기 보다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기억의 속성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지난 봄에 열었던 개인전 《블랙 풀(Black Pool)》(챕터 투, 2021)에서 ‘심장’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을 선보인 바 있는데, 심장이 생명의 시작과 끝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평생 반복운동을 지속하고, 동시에 심박수의 증감을 통해 감정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였다. 이를 드로잉으로 풀어 나갈 때 작가는 신체 기관의 형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심장이 연상시키는 생명 에너지의 확산과 이동, 박동과 긴장을 내포한 이미지를 그렸다. 이러한 추상적인 사고를 이미지화 하면서 작가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Untitled Portrait, pencil on paper, 52.5x45.7cm, 2021 


 생명에 대한 작가의 숙고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드로잉룸에서의 개인전 《Ebony and Irony》는 인간이 생을 통해서 갖는 두려움, 특히 여러가지 두려움 중에서 가장 거대하다고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를 대면하는 문제에 대한 작업들로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스컬 시리즈 <Untitled Portrait>(2021)와 제주도 숲에서의 작가의 경험을 표현한 <Untitled Moment>(2021)는 이번 전시의 핵심 작업이다. 우선 스컬 시리즈는 작가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해골 모형을 연필로 데생한 작업이다. 작가는 정면, 측면, 반측면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해골의 모습을 섬세한 스케치로 그렸다. 그로서는 오랜만에 연필 데생을 하게 된 셈이다. 입시미술의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해 언젠가부터 우리는 데생을 새로울 것 없는 표현기법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작가는 소싯적의 기본기를 오랜만에 발휘하는 것 이상의 긴장과 조절이 필요했다. 죽음의 형상인 해골. 죽음은 너무나 다양한 언어로 묘사되고 이미지화 되곤 하지만, 양정화는 매우 즉각적으로 인지가능한 죽음의 형상이자 미술사에서도 삶의 덧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손꼽히는 해골을 드로잉의 대상으로 선택하였다. 이 구체적인 형상을 눈 앞에 두고 작가는 형용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과 기억, 이에 대한 상념을 끊임없이 현재의 자신에게 소환하고 대면하였을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해골 형상을 그렸다. 관찰자의 시선 각도를 달리하여 여러 장을 그렸지만 매 드로잉마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드로잉을 고르게 진행하였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죽음, 또는 모든 객체에게 벌어지는 사건으로서 죽음에 대한 이미지로 수렴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들이다. 섬세하고 담담한 필치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로잉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죽음을 불편하거나 두려운 대상으로 회피하기 보다는 현실로써 대면하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묘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린 고양이 두개골 드로잉 <Untitled Portrait>(2021)로도 알 수 있다.작가가 스컬 시리즈 드로잉들에 ‘Portrait’라는 부제를 붙인 것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흔히 청춘, 젊음, 죽음등거대한 추상적 개념들에 역설적으로 ‘초상’이라는 단어를 붙여 사용하곤 하는데, 사실 특정한 이미지 하나가 이 거대한 추상적 개념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실을 겪은 개인에게 추상적인 죽음은 없다. 그 상실 자체가 죽음이다. 그 개인은 상실한 대상의 초상을 통해서 죽음을 이해하고자 할 뿐이다.

Untitled Moment, gouache, charcoal on canvas, 182x264cm, 2021 


  지난 봄, 양정화는 제주도의 한 숲을 혼자 산책하다가 잠깐 동안이지만 자연이 주는 두려움을 크게 경험한 적이 있다. 30분이면 충분한 산책길에서 그는 우연히 숲으로 들어섰는데, 자연으로 둘러 싸인 것을 지각하자마자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내 새소리, 바람소리, 발밑의 서걱거리는 돌소리를 감각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없는 듯 온전히 집중하게 된 순간이 찾아왔다. 이 찰나의 감각은 처음 가졌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또 ‘나’라는 존재 자체도 사라지는 것과 같은 자유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 때의 감각과 기억을 양정화는 <Untitled Moment>라는 작품에서 큰 캔버스 위에 목탄을 사용한 드로잉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자유롭고 다이내믹한 터치가 응집했다가 흩어지고,문질러지고 퍼져 나가면서 만들어진 형상은 작가가 숲에서 마주친 풍경의 찰나 같이 느껴진다. 제주도 숲의 바람소리, 새소리, 돌소리의 감각도 전해주는 것 같다. 이 자유로운 획들이 만들어내는 운동감과 밀도의 변화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순간 사라져 열린 감각에 의해 물아일체와 같은 순간을 느꼈을 작가의 경험이 어땠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검정의 역설, 빛


양정화는 검정색이라는 단색의 건식 재료를 주로 사용한다.  그가 사용하는 흑연, 목탄, 콩테와 같은 재료들은 무르기, 단단하기가 다양한데, 작가는 재료를중첩하거나  복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 간의 마찰 정도나 표면의 빛 반사 차이로 인하여 여러 톤의 검정색조가 만들어진다. 일례로 심장 시리즈에서 작가는 다양한 물성의 검정색 재료들을    세심하게 쌓고 문지르고 지우고 또 쌓아올리기를 반복하여 다양한 톤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심장이 연상시키는 생명 에너지의 확산과 이동, 박동과 긴장을 내포한 이미지로서추상에 가까운 유기체적인 형상이다.그 이미지들은 시각적으로 몇 개의 직선과 진한 검정색면을 이용한 단호한 화면 분할에 의해서 적절한    긴장감을 지니는데, 특히 가장   나중에 작업한 <무제>(2021)는    이번 개인전 《Ebony and Irony》에도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특히 화면 중앙의 형상(심장의 형상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이나 불확정적인 형상이다)과 뒷배경이 다양한 뉘앙스의 회색조가 펼쳐지면서 하나의 면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하단의 진한 검정은 상단 부분과 단호한 경계를 이루어 전체 이미지에 긴장을 부여하면서도 동시에 중앙의 형상을 받치고 있는 바닥과 같은 역할을 하여 이 드로잉 작품을 정물과 추상 사이의 어떤 모호한 중간 지점에 위치시킨다. 상단부의 회색조 영역에서 흑연, 목탄이 마찰을 통해 표면에 만들어낸 다양한 얼룩이 불규칙적인 소음을 연상시킨다고 하면, 하단부의 검정은 그 소음을 소거해 우주 공간,완전한 무음 공간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사실 검정은 물체가 빛을 흡수해 버릴 때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검정을 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빛을 통해서 우리는 검정의 다채로운 뉘앙스를 볼 수 있다. 몇 년 전 어느 예술가의 독점욕의 대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반타 블랙 조차도 빛이 있을 때 지각되어지는 것이며, 우주의 블랙홀 역시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왜곡된 빛이 드러내준 윤곽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어진다. 따라서, 암흑 또는 검정은 빛의 반대말 같지만 적어도 우리 눈은 빛을 통해서 암흑 또는 검정을 확인할 수 있다.




1999 RQ36, gouache, charcoal on canvas, 45.5x45.5cm, 2021

1999 RQ36, gouache, graphite, conte on canvas

45.5x45.5cm, 2021 

 ‘1999 Rq36’은 소행성 베누(Bennu)의 발견 초기 이름이다. 밝은 빛을 뜻하며,이집트 신화에서는 불사조를 일컫는다. 이 소행성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하지만 6년마다 지구에 근접하고 있다. 앞으로 100여년 남짓한 미래 언젠가에 베누는지구와 달 사이에 끼어들게 돼 지구와 충돌할 위험도 있다고 한다. 나사가 보낸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얼마 전 이 소행성 촬영에 성공하였는데, 양정화는 그 사진들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마름모꼴의 울퉁불퉁한 돌덩어리가 지구와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는 모습,양정화의 2점의 <1999 Rq36>(2021)는 바로 이 사진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작가의 드로잉은 탐사선이 촬영한 사진처럼 멀리서 오는 태양 빛을 받아 울퉁불퉁한 표면과 입체적 형태를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베누의 사진적 재현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그에게는 캔버스 위에서 검정을 증명하는 빛(검정의 다양한 뉘앙스,검정색조/회색조),빛을 증명하는 검정(완전한 검정,암흑)이 어떻게 혼재하고 있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작가가 이 소행성 드로잉2점에 사용한 재료는 목탄,흑연, 콩테 그리고 구아슈다. 구아슈로 밑바탕을 칠한 후 목탄이나 흑연, 콩테로 텍스처를 쌓았다. 그중 목탄과 흑연은 빛을 반사하여 자신의 검정색을 증명하려는 성질이 있고, 반면 불투명성의 구아슈와 콩테는 빛을 흡수하여 높은 채도의 검정색을 유지하려 한다.이 재료들이 화면 위에서 어떻게 겹쳐지고 만나는지에 따라 양정화의 드로잉은 구조와 긴장을 획득하고,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있는     형상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드로잉 화면은 검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의 드로잉은 검정의 일루전이자, (우주의 블랙홀처럼) 검정의 그림자다. 한 장의  드로잉에서도 빛은 어둠과 붙어 있다. 그리고 작가가 삶과 죽음이 붙어 있다고 말한 것처럼 기억은 현실과 붙어서야 찾아온다. 


Untitled Metamorphosis, charcoal, conte on paper, 52.7x38.8cm,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