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우 Seokwoo Chung, Silent Arc, 2021-2025, Oil on canvas, 181.8 x 227.3cm
© Courtesy of the artist
정석우 Seokwoo Chung, Silent Arc, 2021-2025, Oil on canvas, 181.8 x 22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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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우 Seokwoo Chung, 사라지고 남은 것 Traces Left Behind, 2024, Oil on canvas, 148 x 14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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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우 Seokwoo Chung, 녹색은 잎으로 2 Green is in the Leaf 2, 2025, Oil on canvas,
77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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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우 Seokwoo Chung, 녹색은 잎으로 3 Green is in the Leaf 3, 2025, Oil on canvas,
77 x 72.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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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우 Seokwoo Chung, 능선풍경 55 Ridge 55, 2025, Oil on canvas, 72.7 x 60.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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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은 잎으로》에 부쳐
내가 정석우의 작업을 보고 처음으로 인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얻은 때를 더듬어보면, 기억하기로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 파주에 있는 스튜디오에 놀러갔을 적이 아닌가 한다. 자그마한 체구와 항상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도와는 다른, 혹은 정반대의 느낌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작가 자신으로선 지겹고 싫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작은’이라든지 ‘예의’ 같은 인신에 속하는 단어를 결례를 무릅쓰고 굳이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대비는 극명하달까, 그만큼 예외적이랄까. 캔버스 3개를 이어 붙여 외형상으론 한자로 山(뫼산) 비스무레한 형태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문자 그대로 산과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갓 그림의 크기를 산의 크기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그러니까 물리적 크기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실로 나로선 그런 비슷한 ‘거대한 기운’을 느낀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슬며시 크다는 의미에 기운이라는 말을 집어넣었는데, 무언가 이질적이고, 기분이 나빠지고, 그리고 허락한다면, 악마적이라고 할 법도 한 그런 종류의 기운이라고 부연해야 하겠다. 자문컨대, 바닥에서부터 또아리치는 거칠고 무수한 줄기, 혹은 곤충의 다리, 촉수와 같은 선 때문일까? 거듭 실례를 무릅쓰자면 우중충하다는 단어 말고 더 나은 표현을 찾기 힘든 배색이 인상주의 이래로 의심의 여지없이 자리 잡은 순색 선호의 미감을 무언가 건드린 것일까? 어두운 기운이 향하고 있는 소실점에서 희미하게 타오르는 빛의 기둥을 보면서 나는 왜 이단적 숭배의 감성을 느꼈던 것일까? 3개의 캔버스는 실로 유구한 가톨릭의 삼면화 전통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이 작업의 제목은 <볼천지>라고 한다—생각해 보면 이 제목도 참으로 이상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는 왜 이렇게 구정물만 바르느냐고 농반진반 따져 물은 적이 있는데, 실로 범인의 눈으로 보기엔 팔레트에 혼색을 하고 남은, 원래라면 닦아 버려야 했을 오래된 물감 찌꺼기를 조용히 칠하고 있는 장면을 기어코 상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는 진지하게 ‘탁색’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매료된 연구 대상이며, 탁색을 잘 써야 색을 진짜 잘 쓰는 것이라고 자주 읊조렸다. 그런데 그 탁색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색을 만드는 방식이 매우 기이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기로 했다는 <사일런트 아크(Silent Arc)>(2021-2025)로 말하자면, 아직 유화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캔버스를 밖에 들고 나가서 눈에 맞힌다던지, 갑자기 그림을 며칠 밖에 눕혀 놓고 얼렸다가 실내로 가지고 들어와 녹인다던지, 물을 가득 채운 바가지로 화면을 때리듯 부어 제친다던지 했다는 것인데, 본디 회화가 물감층을 견고하게 쌓아가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있을 터이다. 물감과 기름의 배합에 따라 마르는 속도가 일정치 못하거나 불순물이 첨가되거나 온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못한다거나 하면 자연히 그림에 원치 않는 균열이 생기고 후에는 반드시 변질되며 이는 완성도의 결함과 직결될뿐더러 본의 아니게 그림을 사고자 하는 귀한 손님에게까지 의심을 사게 된다. 필시 화가라면 누구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할 터인데, 정석우의 경우는 혹시 악의가 담긴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잘못된 행동을 정성을 들여 퍼붓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과정을 ‘에이징(aging)’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나로선 조금은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럴싸하다고나 할까. 이유는 아니나 다를까 와인 숙성 따위가 떠올라서 그런 것인데 흔히 작품에 붙이는 명제의 주요 항목이 와인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평소의 쓸 데 없는 단상 때문이다.
언젠가는 정석우의 많은 작업이 퇴적층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시간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냐 물어본 적이 있는데, 미묘하게 반응이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작가 특유의 결정짓지 않는 태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고쳐 생각해보면 질문 자체가 원인과 결과를 뒤바꿨던 건 아닐까. 고라니가 뿔을 가지지 않는 대신 송곳니를 가졌다던가 나무의 뿌리가 거미줄처럼 생겼다던가 구름이 솜사탕 같이 생긴 것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듯이 말이다. 아무튼 에이징이 노화하는 과정이고 사람으로 치면 유물론적 견지에서 시간이 몸에다가 새겨지며 형질이 변형해가는 과정이라면 정석우의 작업 역시 그런 과정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관련해서 정석우는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삶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진술하기도 하고 거대한 규칙 속에서 작품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상상도 한다고 하는데, 특히 후자는 초현실주의자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초현실주의자가 인간 내부의 비인간성을 사회에 해방하는 데 골몰해있었다면, 내가 알기로 정석우가 더욱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도 사회도 상관없는 몰인간적 세계라서 그렇다. 이렇게 색이 다양한 질감과 함께 쌓이고 쌓인다. 탁도가 올라간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색은 보이지 않고 다만 입자가 보인다. 정석우는 그 풍부하고 복잡한 질감을 빛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작가는 구도의 과정으로 여긴다. 뚱딴지같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같이 인류세나 행성적 사유 따위의 말들이 많은 시대에 나는 정석우가 내가 아는 작가 중 가장 거기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빛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정석우의 구도라면, 정말 거기서 그런 세계를 봤다면 나도 그것을 함께 보고 싶은 의향이 있다.
2025. 8. 19.
글 안대웅
정석우 (Seokwoo Chung, b.1981)는 국민대학교 회화과로 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회화 전공을 이어나가 석사를 취득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Ideal Cliff》(파이프갤러리, 서울, 2024) 와 《Horizontal Vine》(Haus der Kunst Enniger, 독일, 2025)이 있으며, 단체전으로는 《1.5°C Trouvaille》(빙하미술관, 원주, 2025), 《궤적들》(쉐마미술관, 청주, 2021)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우수작가(2020)에 선정되었으며, 금호창작스튜디오 7기와 8기 입주작가와 에니거 레지던시 (Ennigerloh, Germany)에 입주작가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