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DIPITY

백경호


2021.05.11(화) - 06.12(토)​



드로잉룸은 5월11일부터 6월12일까지 백경호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평면회화에서 변형된 캔버스로 회화 이면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작업을 해온 백경호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본인 작품의 한 요소인 그리드(줄 긋기)에 주목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림의 한 부분으로 무심하게 형상화해왔던 ‘줄긋기’를 통해

전면을 연결하는 구실을 모색하고, 갈래를 펼쳐 나가는 과정은 평면을 향한 능동적 몸짓으로 관계짓고, 평면과 함께 등장하는 입체 인물형상 작품은 그와

회화가 가지는 끝 모를 질문과 응대로 다가옵니다.


untitled, oil charcoal on canvas wood panel,

dimention variable, 2021


dR: 4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는 작업 자세와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BKH: 이번 전시의 주된 모티프는 ‘줄긋기’ 입니다. 줄긋기는 과거 작업에서 부분과 부분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공백을 채우기 위한 방법적인 기법이


었고 시각적 효과 외에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계획 없이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라 산발적으로 화면을 채워나가는데 부분과 부분 사이에 공백이 생기고 이 공백을 채울 때 스트라이프나 격자 모양의 줄 긋기를 하곤


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생 때부터 저는 이따금 줄무늬 그림을 그렸고 줄을 그리면서 화면을 채우는 것이 편안하고 색의 조합이나 충돌을 감각할 수 있어서 흥미로


웠습니다. 저에게 줄무늬 모양을 칠해나가는 과정은 편안하고 즐겁게 다가옵니다. 결과는 이쁘긴 하나 항상 허전하고 비어있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그래서 줄무늬 이


미지와 다른 이미지를 결합하면서 그림을 이끌어 가곤 했습니다. 자발적이기보다 화면에 드러난 결과에 수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개인전을 제안 받았던 작년부터 다시 한번 줄긋기를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과거의 작업에서 부분이었던 줄무늬를 전체로 확장하여 다뤄보고 싶었습니


다. 어쩐지 비어있는 공백의 감각에 맞서거나 다가가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두려운 것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까요?


작업과정에서 단순히 줄을 긋다가 교차도 해보고, 물감의 양을 늘려 텍스쳐를 구축하기도 하고, 교차된 줄 위에 점도 찍어보면서 그림을 그려갑니다. 처음에는 붓이


내는 물감의 결이 흥미로웠고 줄을 긋고 교차하면서 색조가 달라지는 과정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차된 선이 마치 그물처럼 작용하여 내 일상과 과거로부터 감정


과 기억을 건저올려 주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단순히 줄을 그으면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냐고 묻기도 하지만 제가 느낀 건 오히려 반대입니다. 사소한 기억이


나 순간, 타인과의 대화가 종종 떠오르기에 과정가운데 내 사소한 일상의 많은 시간이 오버랩 됩니다. 그래서 줄긋기는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기보다 마음을 채워주는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면 내부에서는 색의 조합, 구성, 질서를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지만, 결과적인 측면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격자구조의 실루엣입니다. 선들이 남긴 경계의


모호한 인상이 제겐 풍성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려진 선들을 파헤쳐 바라보다 보면 그려온 시간과 기억과 일상 등의 복수의 시공간이 얽히는 묘한 느낌이 생깁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평면 작업 외에도


 사 람 형상의 회화나 조형물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겨서 새로 작업을 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시 막바지까지 그 작업들을 붙들게 될 것 같습니다.


serendipity, oil on canvas, 61x72.9cm, 2021 

무지개, oil on canvas, stretched on wood panel, 194x198.5cm, 2021 



dR: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BKH: 이전 작업의 과정이나 길에서 본 풍경들, 과거와 현재의 추상화가들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작업으로 던지는 메시지나 이유 없는 불가항력에

의할 때가 많죠. 때로는 어떤 가벼운 행위로 작업이 촉발되고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작업을 통해 더 다뤄보면서 작업이 쌓이고 의미는 나중에 찾는 편입니다.


  선물보따리, oil on canvas, stretched on wood panel, 109.7x104.1cm, 2021 


dR: 기존의 작업들을 보면 평면작업과 더불어 인체와 같은 조형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평면작업과 입체작업의 상호관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BKH: 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벽에 눈길이 가서, 가까이 다가서서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벽의 색, 텍스쳐, 시간의 흔적 등이 그 벽을 다채롭고 시간의 결이 풍성하게 담긴


오브제처럼 여겨지게 하고요. 어쩌면 당시 나에게는 그런 풍경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눈길이 간 것일지도 모르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시간이 중첩된 풍경이


기도 한데, 내 그림에게도 앞서 말한 ‘풍경’을 마주하는 듯한 감정이 생깁니다. 그러면 계획과 과정을 넘어서는 해석과 감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이 순간 나는 진행


하고 있던 그림과 그림에서 느낀 친근함을 근거로 그림과 나를 동기화 해보는 시도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친밀한 풍경을 담는 그릇이 사람의 형태입니다. 마음을 방출하


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어떤 평면작업에서는 사람형태의 입체작업으로 연장하는 작업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나와 친밀한 듯 하고, 밀접한 것 같기도


하고, 내 마음이 이런가 생각되기도 하고 내 맘은 이럴거야 하고 멋대로 느끼며 다가가게 되더군요.




dR: "처음에 전체를 보고 부분을 통제하기보다는 부분에 집중하며 부분들을 엮으면서 나오는 작품의 합이, 애초에 전체를 보고했을 때 보다 훨씬 더 크다고 느꼈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예전의 인터뷰 글을 보았습니다. 이번 개인전 작품에서 예전 작업에서의 "부분"에 집중한 작업을 볼 수 있는데요, 위의 언급한 사항과 연결지어 생각해도


될지요?


BKH: 위에 인용된 문장이 제가 5-6년 전에 작업노트에 썼던 구절로 기억납니다. 부분에 대한 그 생각이 여전히 제게 남아있는 것 같네요.


현재의 작업방식도 부분을 다루고 접합하면서 뭔가를 만들어가려고 하니까요.



행복 소원 돼지, korean paper, oil on wood panel, 71x120x14cm, 2021




dR: 백경호에게 작업이란?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표현 하실까요?


BKH: '책갈피'라고 생각되네요. 책갈피가 책의 읽고 있던 부분을 알려주는 도구이듯 지금의 제 그림 작업을 미래시점에서 되돌아 볼 때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dR: 이번 개인전 이후의 작업 계획은 어떠신지요?


BKH: 이후에는 격자 형식에서 선묘 형식으로 줄을 스트로크 형태로 흐트리며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춤을 주제로 인물형상의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