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망토 Ghost Manteau
김지예·이동근
2023.08.08(화) - 08.31(목)
유령 망토
이성휘 큐레이터
김지예와 이동근의 이인전 제목인 《유령 망토》는 한창 작업 중인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이야기해 준 전시제목 후보군(눈에손 손에눈, 손눈눈손)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결정이었다. 이 제목은 서로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해온 두 작가가 이인전이라는 취지 아래 공동 작업을 진행하면서 서로의 접점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유령이라는 단어는 추구하는 방향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뭔가 기이하고 강력한 듯하여 배면의 무언가가 있는 듯한 모티프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선택하였고, 또 “유령의 실체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간접적인 망토에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망토를 추가하여 《유령 망토》라는 전시제목을 결정하였고 말해 주었다. 두 사람 모두 ‘표면을 중심으로 탐구한다’는 점도 반영되었다고 하였다.[1] 필자는 두 작가의 작업을 각각 개괄하고, 두 사람의 접점에 대한 키워드로 ‘유령 망토’가 어떠한 측면에서 유효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동근
생장한 각막
2023
천, 종이, 석고붕대, 아크릴물감, 스프레이, 레진, 본드, 실, 끈, 전선
84x109
김지예
Untitled_1
2023
Glazed ceramic
36x35x4.5
이동근의 신작들은 지난 개인전 《돌연변이》(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2)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는 회화와 입체의 경계에 서서 어느 쪽의 레토릭도 순순히 따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동근의 작업 변천 과정을 지켜봐온 사람들이라면, 구조적이고 질서정연했던 초기 이미지들이 점점 평평한 평면을 벗어나 비정형의 입체적인 지지체로 옮겨오고, 해독되지 않는 암호처럼 이미지들은 규정할 수 없는 형상과 색채를 띠면서 동시에 다양한 물성의 아상블라주가 거듭 시도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동근은 초기부터 회화 화면이 구겨지거나 구멍이 뚫릴 정도로 헤지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아주 잠시 회화를 평평하게 유지해주는 사각 프레임을 존중하는 듯한 작업을 하기도 하였으나 그때도 그는 프레임이 된 캔버스 위에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종이나 패브릭을 접고 펼치기를 반복하면서 이들이 물감과 거의 한 몸이 되도록 칠을 반복하였다. 이렇게 작업한 결과물은 앞뒷면이 있어서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고 설치 방식 또한 양쪽의 구김, 주름, 물성과 이미지를 모두 들여다 보게끔 했다. 따라서 이동근은 처음부터 그의 이미지를 단면의 2차원 이미지로 제시한 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이인전에서 이동근이 선보이는 신작들은 주체의 눈, 특히 눈의 각막을 의식하고 있다. 작가는 눈의 각막을 경계로 하여 그 안쪽과 그 바깥쪽의 불일치를 드러내거나 또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치에 대한 상상을 도전한다. 각막에 대한 작가의 사고는 주체의 시지각 내부, 즉 주체 스스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시각의 경로에 대한 사고이며, 이 사고는 주체의 시지각과 대상 이미지의 진정성에 대한 사고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쓴 작가노트에서 이동근은 “앎과 믿음 사이, 봄과 있음 사이, 그 어디에도 온전하게 안착하지 못하지만 기꺼이 이동을 지속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앎과 믿음, 봄과 있음의 관계가 ‘앎=믿음’, ‘봄=있음’과 같이 일대일로 등치시킬 수 없다는 점은 이미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논증해온 철학적 의제이자 예술의 역사를 끌어온 동력이다. 이동근이 지금 이것을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동을 지속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동근은 이전에 그가 한 전시들에서 ‘광학적 기만’, ‘주름이라는 관측법’, ‘관측일지’, ‘시선으로 펼쳐진 너’, ‘보는 것과 서는 것’, ‘생장한 각막’, ‘각막 혹은 시선’과 같이 시지각과 관련지어 유추해 볼 수 있는 제목을 작품이나 전시의 제목으로 빈번하게 채택했다. 그가 만드는 이미지는 본 것을 재현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데 그가 말하는 광학적 기만, 관측, 시선, 보는 것은 정말 ‘눈의 봄’에 대한 것일까? 필자는 이동근의 지속적인 관심사가 시지각 전반이긴 하지만, 점점 더 눈이 지각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나 중간세계, 그리고 아예 눈의 내부로 초점이 이동해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관심사를 작업에 충실하게 담고자 그는 본인의 회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카오스 그 자체더라도 투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처음부터 비재현적인 이미지를 추구했던 그는 이미지의 시작과 끝을 자신이 아니라 질료와 물감이 결정하게끔 하였다. 통상적으로 회화에서 캔버스나 종이가 지지체이고, 물감과 안료, 기타 재료는 지지체 위에 안착되어 이미지가 형성된다.
이동근
생장한 각막
2023
천, 종이, 아크릴 물감, 볼펜, 스프레이, 끈, 실, 레진, 아크릴, 본드, 알루미늄 판
102x90
이동근
각막과 시선 사이
2023
종이 위에 아크릴물감, 수성건식재료, 볼펜, 마커
30x21.3
그러나 이동근은 종이나 패브릭을 지지체로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레진, 석고, 물감, 파운드 오브제 등이 이들과 서로 엉겨붙어서 다같이 지지체이자 이미지가 되게끔 만든다. 《보는 것과 서는 것》(인천아트플랫폼, 2022)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는 이미지를 고정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갈등이 드러났고, <생장한 각막>(2023)이나 <각막과 시선 사이>(2023)와 같은 작품들은 이미지의 물리적 현실 속으로 시지각을 밀어 넣고자 시도하는데 마치 회화에 고래 뱃속과 같이 회화의 내장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 내부로 눈을 밀어넣고픈 욕구를 드러내는 것 같다. <각막과 시선 사이>는 작가가 날 것 상태의 아이디어를 테스트 한 에스키스에 가까운 작업들이라는 느낌을 주고, <생장한 각막>은 이미지의 완결을 바랬다기보다 이미지의 한계가 어디일 수 있는지 변이를 거듭, 끝까지 밀어부치고자 한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한편, 김지예가 집중하는 감각은 손의 감각인 촉각이다. 그는 흙을 주재료로 하여 세라믹 부조나 아상블라주를 만들어 왔는데, 흙은 그에게 어떤 재료보다 본능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다. 이번 이인전을 준비하면서 김지예의 시선은 길가에 떨어져 뭉개진 식물 덩어리, 또는 그 표면을 오가는 작은 벌레들에게 머물곤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죽은 동물의 형상을 떠올린 것이 작업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작가는 설명하였다. 구체적인 작업 방식은 주워온 나뭇가지나 식물에 천조각이나 티백 잔해와 같은 것들을 아상블라주 하고, 여기에 흙물을 입혀 가마에서 두어 차례 굽는다. 이 과정에서 재료들은 처음 구성과는 다르게 탈락되는 요소들도 생기고, 가마에서 구워지는 동안 원재료는 다 타버려서 최종적으로는 구워진 흙물, 즉 얇은 세라믹 부조가 소성된다. 이를 다시 다른 세라믹 작업이나 파운드 오브제와 아상블라주 하기도 한다. 김지예는 최근 개인전 《Silk Gland》(스페이스 카다로그, 2023)에서 ‘물성의 부드러우면서도 연약하고 단단한 상태를 중첩하고자’ 하였고 이번 이인전의 작품들도 《Silk Gland》 전시와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흙물이 발라지는 틀, 즉 구조를 만들 때 김지예는 얇고 성긴 천, 나뭇잎, 코코넛 섬유와 같이 구겨지거나 부서지기 쉬운, 견고함이나 단단함과 거리가 먼 소재를 주로 사용한다. 이 원재료들로 구성된 입체는 흙물을 발라도 가마에 넣기 전까지는 불안한 형태를 보여준다. 고온에서 구워진 다음에야 비로소 단단함과 견고함을 획득하는 그의 작업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김지예의 작업들은 촉각, 특히 손끝으로 감지되는 섬세한 표면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에게 흙이라는 소재는 손동작과 온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신체와 밀접하게 관계하는 미디엄이다. 작가는 도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형상을 빚어서 만들어낸 이미지를 본능으로부터 나온 이미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또 작업에 들어가기 전 머리속에 대략적인 형태를 잡고 시작하지만 제작 과정 중에 내린 즉각적인 결정들이 더 유효한 조형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김지예
Skin Collage_1
2023
Glazed ceramic, pin
19.5x18x5
김지예
흰_1
2023
Glazed ceramic
11.5x20x12.5
작가들은 서로 공유하는 시공간이 많을 경우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한 작업실을 공동으로 사용 중인 김지예와 이동근은 본질은 다르지만 방법론적으로는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것 같다. 예컨대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각자 작업을 기립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이동근의 <보는 것과 서는 것>, 그리고 김지예의 (2023) 시리즈들은 작품을 세우고자 하는 이유가 다르지만 각기 지지체와 재료를 일체화 시키거나(이동근), 지지대를 만들어 수평적인 작업을 수직적 공간으로 확장을 꾀하는 시도를 하였다(김지예). 김지예에게 작품의 기립은 몸체가 되었던 원래 구조물은 불 속에서 모두 타버린 후 표피만을 남긴 세라믹 작업을 삼차원 공간으로 성장 또는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이동근은 카미유 앙로가 예전에 일본식 꽃꽂이인 이케바나를 차용하여 작업한 <Is it possible to be a revolutionary and like flowers?>(2012)에 주목하여 작업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카미유 앙로는 꽃말 또는 식물이 상징하는 의미들에 주목하여 자신의 개인 도서목록에서 발췌한 메시지를 이케바나를 차용한 설치로 구성했는데, 전통적인 이케바나의 방법론을 문학과 꽃의 상징 관계로 확장하였다.[2] 물성을 지닌 오브제나 재료들로 메시지를 구성할 때 꽃말과 같은 상징은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동근이 카미유 앙로의 방식을 그대로 수용할 것 같지는 않다. 작업실에서 만났을 때 김지예와 이동근은 ‘상징’에 대한 생각을 서로 다르게 피력했는데, 김지예는 상징이란 무언가 다른 것을 연상시키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이동근은 오히려 쉽게 읽히는 키워드를 지워가며 상징을 추구한다고 말하였다.
유령 망토는 현재 시점에서 김지예와 이동근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물리적인 표피를 지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김지예의 표피는 유기물의 소멸이 진행되거나 진행된 후의 표피고, 이동근의 표피는 회화가 진행되는 또는 생장하는 표피라는 점은 구분되어야 한다. 김지예가 만드는 표피는 소멸 또는 소각, 즉 죽음의 과정이 수반된다. 모든 유기물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유령 망토는 유기물이 불에 탄 후 남긴 결과물로 죽음을 가리키지만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흔적이기도 하다. 김지예는 박제나 미이라와 같이 유기체의 죽음과 보존방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의 아상블라주와 세라믹 작업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김지예의 유령 망토는 생명이 소멸한 상태를 기억하기 위한 표피로서의 유령 망토로 볼 수 있겠다. 한편, 이동근에게 유령 망토는 끊임 없이 작가가 의심을 던지며 한계를 밀어붙이는 회화의 표면이라고 하겠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특정한 의미나 상징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단면적인 평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또 회화를 바라보는 단일한 시점이 결정될 수 없도록 입체로 나아갔다. 그 입체는 또 여러 이미지를 조합하고 분절하고 또 덧씌워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아간다.
예술가들은 고대부터 자신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역사가 이루어 놓은 관습에 저항해왔다.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예술과 미디어가 감각기관을 속인다고 하면서 인간이 환영에 빠져들려면 먼저 무시하거나 간과해야 하는 어떤 관습이 존재해야 함을 지적한 바 있다.[3] 김지예와 이동근도 기성의 관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것의 진정성에 집중하면서 의심과 분절, 믿음과 접합을 반복하는 중이다.
[1] 김지예 작가의 이메일(2023년 7월 27일).
[2] https://www.artforum.com/interviews/camille-henrot-talks-about-her-latest-work-33013. (2023.8.4 접속)
[3] 프리드리히 키틀러, 윤원화 옮김,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 예술, 기술, 전쟁』(서울: 현실문화, 2011),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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