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리 Mary Kim Neon Squares 2017 Acrylic on wood 69x69x20cm
김매리 Mary Kim LU_Folded Square 2022 Acrylic on wood 25x30x15cm
김매리 Mary Kim Das Neon Haeuschen_MD 12 2024 Film on paper 30x40cm
김매리 Mary Kim Das Neon Haeuschen_MD series
김매리는 서울과 뉴욕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빼곡한 빌딩이 연상되는 두 도시에서의 시각적 경험은 “도시의 표면”, 즉 건물의 기하학을 회화의 언어로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도는 건물 이면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건축을 전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작가의 과제 중 하나는 ‘유기적인 구조물을 이끌어내도록 설계된 모듈’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작가에게 지속 가능한 작업 언어의 창조처럼 이해되었고, 같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하나의 진행 과정으로서의 프로젝트인 “오드라덱 구조물”이 구체화되는 시작이었다.
이 구조물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어떤 목적에 합당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가 지금은 부서져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닌 듯하다. 적어도 그렇게 볼 만한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가 되는 부분이나 부서진 자리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전체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완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에 관해서 더 상세하게 말할 수는 없다. 오드라덱은 대단히 민첩해서 붙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1)
“오드라덱(Odradek)”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가장의 근심」에 나오는 존재이다. 이러한 오드라덱의 형상이 작가의 구조물과 흡사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부른 것이 그 이름의 근원이다. 모듈 한 개의 크기가 정해지면 하나의 작품 안에서는 동일한 규격의 모듈 한 개만이 반복하여 모습을 완성한다. 모듈로 만들어진 작가의 작업 세계는 크게 수평의 면을 딛고 서 있으며 360도 관찰이 가능한 “타워(Tower)”, 수직의 면에 설치되며 주로 한쪽 면의 형태를 파악하게 되는 “그리드(grid)”와 평면을 사용하여 접고 잘라내어 부피를 형성하는 “폴드(folds)”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새롭게 시작하는 시리즈인 “모듈 스티커” 시리즈를 볼 수 있다.
모듈 스티커 작업은 《기능적 장소 Functional Place》(뮌헨, 2023)에서 시작되었다.2) 뮌헨의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빈 아파트에서 주거시설을 바탕으로 하여 작품과 작품이 설치된 공간이 어떻게 그 자체로 작업의 맥락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한 전시였다. 당시 작가는 주거 환경 중 지극히 기능적인 공간인 화장실의 격자무늬 타일을 무척 흥미로운 작업의 기반으로 생각하였고, 이를 전제로 하여 자신의 언어인 기울어진 모듈을 투영해 본 것이 첫 번째 모듈 스티커 작업이었다. 이후 개인전 《네온 하우스 Neon House》(뮌헨, 2024)는 주말 시장터 옆의 공공화장실로 쓰이던 곳을 개조한 대안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스티커의 색상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UV 라이트를 통해 낮과 밤이 다른 두 가지 상황의 연출을 시도하였다. 당시에는 공간 전체를 빈틈없이 모듈 스티커 작업으로 채워 넣어 공간 전체가 모듈로 이루어진 하나의 덩어리같이 읽히기도 했다.
김매리에게 색이 가지는 위상은 모듈 형태의 정도에 이른다. 작가에 따르면, 색이라는 요소의 성격은 상대적이어서 구조물의 형태와 상호작용을 이루며 변신하므로 다양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면에서 무작위로 선택되는 색은 작가의 작업에서 조각의 삼차원적인 모습을 부각하거나 혹은 평면적으로 보이게 환영화하여 같은 구조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기능적 요소가 된다.
전시 《네온 룸 Neon Room》에서는 형광 주황색과 회색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패턴이 전시장을 가로지른다. 유리타일에 맞게 재단된 직사각형과 이를 대각선으로 잘라 만들어진 삼각형은 마침내 실제 공간을 모듈의 지지대로 삼아 모듈 그 자체로 변환시킨다. 유리타일에 밀착되어 전시 공간과 작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모듈 시리즈가 건물의 벽과 바닥을 따라 확장하는 모습과 함께 그리드 연작들이 각자의 위치를 점한 채 자신만의 크기로 소리를 내고 있다. 회화에서 건축으로 이어진 작가의 관심사는 《네온 룸》까지 이어지는 궤적을 그리며 공간의 모듈화를 목표로 한다. 김매리의 작업은 선명한 색으로 구분된 모듈의 반복을 통해 공감각적 유희를 경험하게 한다.
글 민지영
1) 프란츠 카프카, 『변신·선고 외』, 김태환 옮김, 을유문화사, 2015
2) 전시 《기능적 장소 Functional Place》는 작가 김매리와 신민경이 공동 기획하였으며, 참여작가로는 김매리, 신민경, Afra Dopfer, Carolina Kreusch, Na Kim(김영나)이 있다.
김매리(b.1974, 뉴욕 출생)는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뉴욕 시티 컬리지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크랜부륵 아카데미 오브 아트 건축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는《네온하우스》 (대안공간 다스클로호이션, 독일, 2024),《모듈의 변신》(예술공간 수애뇨 339, 서울, 2023),《Light Folds》(체이카 레지던스, 미국, 2022),《변조》(갤러리 제이콥1212, 서울, 2021),《The play of principles》(위블래커 호이즐 갤러리, 독일, 2020) 등이 있다. 수상 및 레지던시로 뮌헨시 작업공간 지원기금(2014-2020, 독일), 맥콜센터 창작스튜디오(2005, 미국), 디트로이트 YMCA 공공 미술 (미국, 2005) 등이 있다. 현재 독일 뮌헨에서 16년째 거주하며 독일과 미국 등에서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