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영실 Youngsil Pyo, 그늘 Shade, 2026, Oil on canvas, 130 x 162cm
© Courtesy of the artist
표영실 Youngsil Pyo, 그늘 Shade, 2026, Oil on canvas, 130 x 162cm
© Courtesy of the artist
표영실 Youngsil Pyo, 미지근한 공기 Lukewarm Air, 2026, Oil on canvas, 130 x 97cm
© Courtesy of the artist
표영실 Youngsil Pyo, 밤길 Night Road, 2026, Oil on canvas, 72.7 x 60.6cm
© Courtesy of the artist
표영실 Youngsil Pyo, 고요 Stillness, 2026, Oil on canvas, 24 x 33cm
© Courtesy of the artist
표영실 Youngsil Pyo, 겹겹 Layered, 2026, Oil on canvas, 45.5 x 53cm
© Courtesy of the artist
초록 베일 Green Veil
자신은 문을 열어 달라고 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문지기는 문 너머에 있으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두드려도 소용 없다. 혼자 열고 들어 오너라” 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뿐이다.1
표영실은 생의 불안정함에 대해 말하며 이를 위로하는 심정으로 완벽한 화면을 만드는 것에 신중을 기해왔다. 삶의 예측할 수 없는 모든 것에서 시작되는 불안을 가다듬기 위해 작가는 완벽하고 안전한 표면을 만들고자 오래도록 화면을 매만졌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보드라운 표면은 오히려 외부의 손상에 취약해졌고, 작가는 자신이 너무나 집요해진 것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한 곳으로 모아진 신경을 환기하기 위한 산책에서 마주한 풍경으로 전시 《풀. 숲》이 시작되었다.
작가는 산책길에 본 풍경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가까이서 본 숲과 덤불이 벽이나 어떤 공간의 경계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안과 밖을 가르는 자연의 장막 앞에서 표영실은 망설여왔다. 산책길의 수풀을 앞에 두고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 온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서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문의 존재와 함께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열 수 있는 문은 작가가 늘 느껴왔던 감정과 동시에 작업의 지속과 변화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지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어떤 시점에서 표영실은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작가는 불안함을 잠재우려다 오히려 견고해진 형광 분홍색의 얼굴에서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깥의 수풀로 나아갔다. 숲은 짙은 초록색과 보송하거나 뾰족해 보이는 빛 덩어리들을 안고 화면을 가득히 채운다. 작가의 꾸물거리는 붓질을 따라 가면 작은 집과 마름모 형태의 반짝이는 빛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표영실 작가는 풍경과 인물을 병치하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분홍빛의 형상은 우리에게 집과 반짝이는 빛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짙은 초록의 덩어리 사이에서 작은 힌트를 건넨다.
작가는 어쩌면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대는 것이 삶이 아닐지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열리지 않는 문을 두고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내 손으로 만졌던 경험만이 결국 남는 것 같다고 했다. 표영실은 붓으로 풍경을 만지고 두드린다. 형태를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풍경을 전하려는 작가의 움직임 속에서 오래 닫혀 있던 화면의 표면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2
글 민지영
1. 나쓰메 소세키, 『문』, 송태욱 역, 현암사, 2024, p.252.
2. 표영실 작가의 '형태를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풍경을 전하려는 움직임'은 작가의 망설이고 서성이는 태도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메를로-퐁티가 언급한 풍경에 대한 세잔의 관점을 떠올린다. "메를로-퐁티는 풍경에 대한 세잔의 사색적 관찰을 외화 또는 탈내면화로 묘사한다. "우선 그는 다양한 지층을 명확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고, 그다음에는 더 이상 꼼짝하지 않은 채 세잔 부인의 말처럼 눈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았다. [...] 그는 말했다. 풍경은 내 속에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3,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