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Hyunjung Park, Image 180,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먹, 에나멜, 130.3 x 193.9cm
© Courtesy of the artist
박현정 Hyunjung Park, Image 196, 2024, 종이에 아크릴릭, 먹, 수채, 131.2 x 1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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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Hyunjung Park, Image 176, 2024, 종이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수성 오일, 59.5 x 4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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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Hyunjung Park, Image 193,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오일, 100 x 8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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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Hyunjung Park, Image 195, 2024, 종이에 아크릴릭, 먹, 수채, 스티커, 60.5 x 8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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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사이에서
"나는 그림의 시작이 어떠하든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아름다운 결말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자리를 지킬 석탑 같은 견고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사물로든 극강의 밸런스를 찾아 쌓아 올리는 기예에 가깝다. 무게중심과 표면의 마찰, 리스크를 고려해서 쌓는 순서와 닿는 지점을 결정하는 판단력. 내게 작업이란 그런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제대로 서 있는 것, 고요히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해서 전신의 무게중심을 조율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완성한 그림도 그런 이미지이길 바란다. 찰나를 포착해서 영원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는 상태이길 바란다." ― 박현정
여기 삶이 가진 불확실성과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작가 박현정이 찾은 경우의 수가 있다. 이 경우의 수는 평면에서 회화의 여러 조형 요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 이 팽팽한 겨루기의 사이에서 박현정은 대체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들을 중재한다. 작품으로 우리와 마주하는 박현정의 이미지는 다중우주의 세계를 거쳐 온 하나의 답변이다. 완성으로 귀결된 화면 이전에는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 과정이 있다. 작업을 시작한 종이나 캔버스를 촬영하고, 사진 위에 덧그리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을 때까지 선의 두께, 면의 크기, 색의 정도를 여러 번 실험한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면 다시 실제의 화면에 구현한다.
아이패드의 사용은 이 반복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압축하기 위한 방법이다. 또, 작가는 디지털 툴을 사용함으로 가장 먼저 그린 것이 가장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실제 레이어의 구조에서 벗어나 시간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는 스케치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이 전개되며 디지털 브러쉬와 지우개에 익숙해지게 되었는데, 실제의 지우개가 흔적을 남기는 데 비해 아이패드의 지우개는 ‘음’(negative)의 공간을 제시하며 작가는 이를 조형 요소의 일부로 포용하였다. 최적의 결과를 찾기 위한 부단한 과정들은 비단 이미지의 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박현정은 디지털 스케치와 실제 화면을 왕복한다. 이 경로의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작가의 움직임이 있다. 결정된 요소를 그리기 위해 캔버스 위, 손과 팔의 궤적을 연습한다.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신체를 피하기 위한 방안이다.
화면의 구성과 몸을 통제하는 과정을 통해 시뮬레이션 된 화면과 시각적 이미지의 사이의 격차가 감소하고, 이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제시할 요소가 투입된다. 번져 나가는 수채 물감과 먹의 사용으로 작가는 피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상황에 처하지만, 이는 오히려 긴장된 숨을 내쉴 수 있는 틈이 된다. 작가는 예상할 수 없는 화면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으로 재료와 요소의 크기, 신체의 움직임을 통제하며 이미지를 구성해 왔다. 이미지의 완성을 위한 실험은 이제 통제 불가능의 변수를 만나 새로운 줄다리기에 도전한다.
빼곡한 격자 위를 유영하는 붓의 흔적이 있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갈림길을 지나 수렴된 결과가 있다. 박현정의 작품에 이르러, 우리는 무수한 가능성의 길 위에서 오직 하나의 답을 위해 결정하고 수행하는 이의 모습을 본다.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에서 이제 작가는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며 나아간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균형을 향해 전진한다.
글 민지영
박현정(b.1986, 창원)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개인전 《에메랄드 태블릿》(YPC SPACE, 서울, 2023), 《슬라임 플러시》(학고재 디자인|프로젝트 스페이스, 서울, 2019), 《웬즈데이 워밍업》(아카이브 봄, 서울, 2019), 《이미지 컴포넌트》(합정지구, 서울, 2017)를 개최했다. 2020년부터 2년 동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SeMA cafe+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소쇼룸(서울), 오픈베타공간 반지하(서울) 등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서울) 신진작가워크숍에 참여했고, 아트스페이스 휴(파주), 그라시 박물관 응용미술관(라이프치히, 독일), 대림미술관(서울), 학고재 갤러리(서울)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취미관 TasteView 趣味官》(2017~2018)과 《굿-즈》(2015)의 기획에 참여하고 작가로서 참여했다. 2023년에는 금천레지던시 14기로 입주했으며 2014년부터 현재까지 스튜디오 파이(서울)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