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수 Hyeonsu Jo, Painting of Bamboo Forest 7, 2026, Copper leaf on Korean paper, 193.9 x 224.2cm
© Courtesy of the artist
조현수 Hyeonsu Jo, Painting of Bamboo Forest 7, 2026, Copper leaf on Korean paper, 193.9 x 22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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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수 Hyeonsu Jo, 수풀 14 Thicket 14, 2026, Copper leaf on Korean paper, 116.8 x 3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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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수 Hyeonsu Jo, 수풀 4 Thicket 4, 2026, Copper leaf on Korean paper, 162.2 x 11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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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수 Hyeonsu Jo, 수풀 4 Thicket 5, 2026, Copper leaf on Korean paper, 162.2 x 336.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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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수 Hyeonsu Jo, 수풀 6 Thicket 6, 2026, Copper leaf on Korean paper, 116.8 x 8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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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물질의 장, 인간과 비인간 매체의 조형적 결합
조현수는 동박의 화학적 부식 반응을 활용해 자연의 변화와 생동하는 흐름을 그림에 담아내는 한국화 작가이다. 사실 미술의 장에서 금속 재료를 통해 부식의 시간을 화면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은 간간이 존재해 왔으며, 자연의 기운생동을 시각화하려는 시도 또한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실현된 바 있다. 그렇다면 조현수의 작업은 언급한 과거의 실험적 시도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의 화면에 주목하는가.
일반적으로 회화에서 부식이라는 화학작용은 후처리를 통해 그 결과를 고착화하는 것이 관례이다. 실내 전시와 감상을 전제로 하는 회화의 조건상, 통제되지 않고 지속되는 부식은 안정적인 시각적 대상으로 기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기운생동 역시 우주의 에너지와 생명의 흔적을 화면에 정착시키는 메커니즘 내에서 작동하기에, 궁극적으로는 특정 순간의 포착을 의미하며 따라서 '정지'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이를 기존의 비평 관점으로 표현하자면 “흐르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포착하여 그 순간의 영원성을 화면에 담아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더니즘 미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유효할지 모르나, 가변성과 현존을 중시하는 동시대 미술을 긍정하기 위한 서술 방식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조현수 작가가 지향하는 지점은 바로 이 고착화된 정지 상태의 극복이다. 그는 닥종이와 동박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현해 낸 대나무와 수풀, 그리고 산맥의 형상이 멈춰 있는 시각적 환영으로 기능하기를 거부한다. 그에게 회화는 완결된 장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의 궤적이자 생동하는 물질의 장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생동하는 물질’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인지하는 생명의 싱그러운 성장이나 활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 자리한 수풀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환 과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온전치 못한, 거친, 뜯겨나간, 빛바랜 등과 같은 파괴적 수식어가 어울리는 수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림을 조망하면, 그 거친 표면 속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이 도출된다. 이는 치열한 화학적 산화와 물질의 거동(미시세계)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최종적으로 견고한 생명의 실재(거시세계)를 유지해내는 인과적 결과물에 가깝다.
전통적인 한국화의 맥락에서 기운생동은 작가 신체의 에너지가 필묵(筆墨)의 골법용필(骨法用筆)을 통해 가시적인 기(氣)의 흐름으로 선형화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나아가 여백과 필묵의 역학 관계 속에서 가변적인 지각의 장을 만들어 낸다고 기술되지만, 이러한 관념적 설명은 조현수의 물리적 작업 세계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신유물론의 맥락, 특히 제인 베넷(Jane Bennett)이 정립한 ‘생동하는 물질(Vibrant Matter)’ 개념으로 해석할 때 비평적 정합성이 명확해 보인다.
조현수 작가가 사용하는 동박은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수동적인 질료(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고유한 에너지를 지니고 스스로 시공간을 변형시키는 능동적인 ‘비인간 행위자’이다. 닥종이 위에 동박을 붙이고 약품을 도포하는 행위는 물질을 인위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매체가 스스로 변화하고 거동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인간과 비인간의 유기적 결합’이다. 실제로 그가 펼쳐놓은 화면은 전시실 내부의 산소, 습도와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암갈색, 잿빛, 갈색, 초록색 등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지속하는 능동적인 행위 자체를 지속하고 있다.
시각예술의 장(Field)에서 작가가 구성원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형식적 특이성을 갖추어야 한다. 조현수의 형식적 특이성은 한국화라는 전통적 범주에 동판 부식이라는 이질적 매체를 결합하여 발생한다. 그리고 이 결합은 인간(작가)과 비인간(동박)의 상호-행동을 통해 일방적인 완결을 유예하고, 과정과 흐름 속에서 끊임없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구조를 띤다.
그러나 단순한 시각적 주목을 넘어 작가로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형식적 특이성이 내용적 풍부함과 정밀하게 맞물려야 한다. 내용적 풍부함이 반드시 소재와 주제의 외연 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다루고 있는 특정 소재나 대상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그 존재를 화면의 온전한 주체로 격상시킴으로써 내포의 깊이를 확보할 수도 있다.
조현수 작가는 이처럼 기존 대상에 집중하는 서사 외에도, 최근 오래된 건물의 부식 상태와 같은 인공적 시공간의 흔적을 작업 내부로 끌어들이는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 내포의 깊이를 심화시키든 외연의 영토를 확장하든, 작가가 주목하는 비인간 매체와 대상을 능동적인 행위자의 영역까지 성공적으로 견인할 수 있다면, 그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의 장에서 또 다른 차원의 미적 성취를 획득할 것이다.
글 김재환 큐레이터 (경남도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