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형 Cho Eunhyung, Hair, 2026, Oil on canvas, 27.5 x 27.5cm
© Courtesy of the artist
조은형 Cho Eunhyung, Hair, 2026, Oil on canvas, 27.5 x 2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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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형 Cho Eunhyung, Closer, 2026, Oil on canvas, 45.5 x 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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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형 Cho Eunhyung, Just A Girl And Her Brontosaurus, 2026, Oil on canvas, 27 x 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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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형 Cho Eunhyung, Mirror, 2026, Oil on canvas, 82 x 3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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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형 Cho Eunhyung, Memory of Memory, 2026, Oil on canvas, 45.5 x 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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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룸은 [2026년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선정 작가 조은형의 첫 개인전 《Winds》를 개최한다. 작가는 기록해놓은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하여 화면을 만들어가며, 단어는 화면을 물들이듯 번져나간다. 붓질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흐름 속에서 등장하는 대상들은 작가의 기억과 감각에서 비롯되지만, 명확한 서사를 지시하지 않고 촉각적인 인상을 남긴다. 우리는 조은형의 낯설면서도 섬세한 화면에서 미세한 숨결(Winds)을 가진 형상과 조우한다.
민지영(이하 민):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어떤 것을 그려도, 작가님의 작업으로 보이는 것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붓의 움직임,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과 같은 중요한 과정이 있으신가요?
조은형(이하 조): 시작은 간단한 노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싶은 것의 실마리가 될 단어를 적어놓고 그 단어로부터 드로잉을 거쳐서 캔버스에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갑니다. 단어로부터 이미지가 되면서 화면적인 고민으로 바뀌고 처음의 것을 잃지 않는 선에서 이미지가 어떤 힘을 가질 때까지 두고 보는 것 같아요. 숨긴 마음, 벽, 거울, 모서리에 무지개, 밝은 길 등 이런 식으로 하나의 단어로부터 연결되어 파생되었어요. 단어가 발견되는 건 다양한 이유인데 공통으로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대상들인 것 같아요. 일상에서 발견의 순간은 짧고, 후에 되새기면서 찬찬히 그 말이 주는 어감과 역할을 곱씹어 봅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굽은 등'이 될 수도 있고, ‘밝은 길' 같은 경우에는 대화 중에 들은 낯설고 특별했던 단어예요.
그리고 붓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유화와 친해지는 시간 동안 많이 고민한 것 같아요. 손에 익어 있는 움직임을 쓰면서도 제가 느끼기에 자연스러운 정도를 찾아갔습니다. 화면을 구성할 때는 이미지의 큰 틀에서 세부적인 것들을 더해가는 방식이에요. 처음부터 화면의 요소들을 전부 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그림이 시작한 요소로부터 떠오른 것들을 더해갑니다. 그림마다 각각 존재 이유가 있고 눈앞에 있는 그림이 어떤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지를 주로 고민하며 그립니다. 예를 들면 <Deer>를 그리면서는 사슴이 생명력을 가질수록 그림으로서 힘이 생긴다고 느껴져서 묘사가 짙어졌어요. 그에 반해 캐리어의 묘사는 덜어내려고 했어요. 두 대상 사이 약간의 차이와 이상함이 환기할 수 있는 구멍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요.
민: 올해 1월, 개인전을 생각하며 이야기해 주신 '손에 잡히지 않지만 살짝 감촉이 느껴질 정도의 지나가는 바람들'이 작가님의 그림에서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전시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하이트 컬렉션, 2025)에서는 교토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바람, 햇빛, 구름, 이끼 같은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천천히 체화하는 계기가 되고, 작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이 계기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조: 교환학생 당시에 몸으로 나서야 배울 수 있던 것들이 많았는데, 자연으로부터 감사함을 느낀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일부러 자연을 찾아간 건 아니지만, 우연히 마주친 것들이 저를 한숨 돌리게 하고 조금 멀리서 볼 수 있게 도와줬던 것 같아요. 자연은 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현재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도구로,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하는 존재에요. 순간순간 형태가 달라지는 바람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감각으로 알려줍니다. 그것만으로 어떠한 ‘괜찮음'을 느끼고 있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시간이나 번뇌를 내버려두고 그저 여기에 있는 것에 충실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작업에 끼친 변화인 것 같아요. 지금 방을 둘러보면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는 캔버스는 든든함이 있어요. 이미지로서 마음에 든 그림이든 그렇지 않은 그림이든 그림 안에서 보냈던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어요.
민: '든든한 마음이 들게 하는 캔버스'라는 말씀은 1월에 메일로 보내주신 작업계획서의 내용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라며, 그림의 존재가 나에게 '필요한 물질'에서부터 어딘가에 남겨지는 물건이 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하이트 컬렉션의 그룹전부터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을 보며 작가님이 집에 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집을 멀리서 보는, 그러니까 내가 집 안에 있는 모습보다 외부에서 집을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가님은 그 점을 의식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작품 <Deer>에 그려진 캐리어도 어쩌면 집의 일종으로 느껴졌습니다.
조: 아마도 집의 외면은 누구나 다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집의 안은 개인과 밀접한 생활공간이라면 외면은 벽들일 뿐이죠. 일본의 집들을 보다 보면 더욱 사람 사이에 통용되는 거리감이 느껴져요. 집의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돼요. 그래도 공평하게 풍경으로서 볼 수 있는 집의 외부는 빌려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집에 대한 내밀함은 이제는 익숙한 어구가 된 ‘자기만의 방' 제목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가 가진 자기만 아는 것, 자신만 알면 되는 그런 것들이 담긴 방은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에요. 또 사람을 대변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어느 집에 사는 누군가가 떠났을 때 집을 들여다보면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사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그림을 남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남겨질 후를 생각하면 이왕이면 소중하게 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골동품 플리마켓에서 누군가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제 그림이 물건으로 오래 보여지는 걸 상상할 수 있었어요. 사슴 그림의 캐리어가 집의 일종으로 느껴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슴은 껑충껑충 잘 뛰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인데, 본인의 의지인 것처럼 캐리어 안에 앉힌 건 잠깐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동물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행동이나 표정으로 느껴져서 그림에 자주 등장시키고 싶다고 여깁니다.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마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소망과 바람이 목을 내밀고 있는 것 같아요.
조은형(Eunhyung Cho, b.1996)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예술사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사에 재학 중이다. 2024년 교토예술대학교 대학원 유화과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하였다. 그룹전으로는 《브랜디를 마실 것 같은》(하이트 컬렉션, 서울, 2025)과 《Hop》(교토예술대학, 교토, 2024), 《괴담》(교토예술대학, 교토, 2024), 《올 투모로우즈 파티스》(Artspace 3, 서울, 2022)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