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Grief comes in waves


임지민


2023.02.09(목) - 03.09(목)




눈도 한번 감지 못하고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展에 부쳐

박준

 

 

색을 두고 왔어. 우리가 둘이서 말도 없이 얼굴 마주하며 보았던 빛깔들. 아마 지금은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었을 거야. 번지는 게 유일한 일이었던. 오방으로 말갛게.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말이니까 말로 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곳에 어떤 순서가 있다고 믿었어. 왜 살아보면 알잖아. 과원에 드리워진 안개를 걷어내는 아침의 울림과 해변에 적힌 글자를 지우는 밀물의 운율과 끝을 본 사람들의 젖은 목청들. 모두 한결이었지. 이 잇달음을 맥이라 부르며 그리며 짚어보며 우리가 놀았던 것이고.

 

이곳에서는 흰 것이 검은 것을 만나. 그러고는 순서도 없이 외연을 잃어버려. 선(線)들이 발을 질질 끌고 지나간 자리마다 어제의 마디가 듬성듬성 그려져. 갖춤 없는 빛이 켜지는 것도 바로 이때야.

 

한쪽으로 생각을 몰아넣고 전부인 양 살아갈 거야. 기다리지 않을 거야.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 앞에서는 그냥 양손을 펴 보일 거야. 하나 숨기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지.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니 눈을 가까이 대고 목숨이니 사랑이니 머리니 운명이니 양명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따라 읽을 필요는 없어. 이제 모두 금이 가고야 만 것들이야.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Charcoal on paper, 21×29.7cm, 2022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Charcoal on paper, 21×29.7cm, 2022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Charcoal on paper, 21×29.7cm, 2022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Charcoal on paper, 21×29.7cm, 2022

작별

Oil on canvas, 53×45.5cm,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