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민 Choi Momin, 방황하는 손 Wandering Hand, 2025, Oil on linen, 46 x 56 cm
© Courtesy of the artist
최모민 Choi Momin, 방황하는 손 Wandering Hand, 2025, Oil on linen, 46 x 5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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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민 Choi Momin, 외출 Going Out, 2025, Oil on linen, 55 x 7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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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민 Choi Momin, 컵 닦기 Polishing Cups, 2025, Oil on linen, 30 x 2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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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민 Choi Momin, 씻어내기 To Wash Away, 2025, Oil on linen, 56.5 x 4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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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민 Choi Momin, 깊은 잠 Deep Sleep, 2025, Oil on linen, 92 x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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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손
손은 말과 사물, 풍경보다 먼저 세계에 닿는다. 우리는 손으로 건네고, 만지고, 기억하고, 전한다. 아주 작고 느린 제스처 하나에도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기고, 감각은 언제나 손끝에서 먼저 흔들린다. 몸 전체로 발화하지 않아도, 손은 하나의 언어가 된다. 이따금 손은 말보다 더 오래 남는 진심의 그릇이 된다. 그러니 손은 하나의 기억이고, 기억은 다시 몸의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최모민의 개인전 《Two Hands》는 이러한 현실에 놓인 손의 언어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몸에 공존하는 두 개의 손—그림을 그리는 손과 생계를 꾸리는 손, 감각을 담는 손과 타자를 향한 손—이 엇갈리고 충돌하고 겹쳐지며, 존재의 균열과 정체성의 감각을 회화로 풀어낸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자신이 세계 안에서 어떤 몸으로 존재하고, 어떤 시선으로 읽히며, 어떤 언어로 자신을 말하게 되는지를 회화의 언어로 응답한다. 한 도시의 풍경 안에서 익명으로 존재하던 인물은 이제 화폭의 중심으로 걸어 나와 자신의 그림자를 응시하거나 그림자가 된다. 전시는 일시적 도시 이주민으로서, 그리고 동시대의 젊은 예술가로서 작가가 지난 수년간 쌓아온 회화적 실천 이후에 전환점에 서 있다. 런던에서의 유학생활은 작가에게 회화라는 언어를 다시 분해하고 조립하는 시간이자, 삶의 단면들을 보다 밀도 높은 회화적 사유로 환원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 작업에서 최모민은 재개발 구역의 풍경, 불분명한 제스처를 반복하는 인물, 기능하지 않는 존재들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도시의 잉여적 감각을 포착해왔다. 도시의 생태학적 조건, 주거와 생존의 불안정함,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행위들은 캔버스 위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불편한 방식으로 침묵하는 몸짓이 되었다. 이는 거대한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살아가는 세대의 감각을 기록한 일종의 미시적 풍경화였다. 풍경 안에 스며든 인물들은 종종 얼굴이 없는 채 나타났고, 그들의 몸은 공간 속에 녹아 들어 존재의 무게보다 존재가 은신하는 흐릿함의 태도에 주목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더 이상 인물을 숨기지 않는다. 자화상(Self-Portrait) 형식에 방점을 찍은 이 전시는 익명성의 뒷모습에서 나와 자화상을 전면에 드러낸 타자화된 몸, 문화적 비가시성, 이방인의 시선 안에서 흔들리는 자아는 익숙하던 풍경을 떠나, 낯선 초상으로 재편된다.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겪은 '동양인 남성 유학생'으로서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자신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조건에서 발화하고 소멸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즉, 이 전시는 이 질문의 회화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하나의 신체에 공존하는 두 개의 역할, 두 개의 손은 단지 이중생활의 비유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직면한 실존적 갈등을 상징한다. 작업실의 붓질과 파트타임 노동(코리안 레스토랑, 2025) 사이에서 작가는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의 내면을 천천히 부각시켜 나간다. 신작들(깊은 잠/씻어내기, 2025 등)은 드로잉의 제스처를 회화로 끌어들이고 캔버스 바깥으로 확장된다. 느슨해진 붓터치는 묘사보다 사유의 흔적이며 자신의 컬러 팔레트를 완전히 바꾼 동일하게 드러나는 특정 색들은 그에 따른 정서적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인물의 외형보다는 그 감정의 온도, 심리적 밀도, 그리고 일상적 무력감의 색이 화면을 점유한다. 그리하여 인물화는 단지 얼굴을 재현하는 장르가 아니라, 존재가 서 있는 방식을 묻는 장이 된다. 나아가, 이번 신작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표현 방식의 물성적 전환에 있다. 과거에는 풍경과 인물이 같은 밀도로 화면을 점유했다면, 이제 작가는 대상에의 접근을 훨씬 느슨하고 파편적으로 다룬다. 유화 물감을 반복적으로 쌓고, 덮고, 다시 그리는 행위를 통해 완성의 순간을 유예하며, 그 과정에서 화면은 자연스럽게 두터워진다(서빙, 2025). 그러나 두께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극도로 간소화된 붓질로, 어떤 장면은 물감이 묽게 흘러내린 채 그대로 남겨진다. 이는 이전의 묘사 중심 페인팅들과 비교할 때 훨씬 더 얇고, 느슨하고, 덜 재현적인 화면으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불확정성에 대한 미학적 응답이다. 비가시적인 존재, 즉 사회적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자’로 위치 지어지는 주체의 감각은 화폭 위에서 ‘완결되지 않은 형상’으로 나타난다. 선은 더 이상 윤곽을 규정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흘러나오는 감정의 조류이고, 색은 설명보다 정서적 밀도를 지닌다. 작가는 대상의 외형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존재가 놓인 조건, 부유하는 감정, 그날의 빛과 기분을 따라 회화의 리듬을 구성한다. 그림자는 자주 등장하고, 얼굴은 흐릿하게 남겨지며, 정체성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감각되는 것으로 제안된다.
전시 《Two Hands》는 결국, 하나의 몸에 공존하는 이중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그림을 그리는 손과 노동하는 손, 감각하는 손과 살아내는 손. 작가는 이 손들 사이의 간극을 화면 위에 겹겹이 쌓으며, 회화가 단지 이미지를 담는 그릇이 아닌 존재의 조건과 감각을 드러내는 장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익명의 풍경에서 자화상으로, 평면에서 감각의 층위로, 최모민의 회화는 지금, 더욱 내밀하고 복합적인 자전성과 실험 사이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점차, 두 개의 손으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다층적 진실을 우리에게 건넨다.
최모민(Choi Momin, b.1985)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서 예술사와 전문사를 취득하였고, 영국왕립예술학교 회화과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개인전 《내가 애정하는 로봇청소기는 오늘도 거실 지도를 만들어 활보한다》(드로잉룸, 서울, 2022), 《요괴 생활》(out_sight, 서울, 2021), 《꿈 같은 삶》(산수문화, 서울, 2019), 《식물극장》(원앤제이 플러스원, 서울, 2019), 《태양 아래》(은평문화재단, 서울, 2018), 《익명의 풍경》(갤러리 175, 서울, 2017)을 개최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자아 아래 기억, 자아 위 꿈》(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3), 《경유지》(아트센터 화이트 블럭, 파주, 2022),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아마도예술공간, 2020, 서울), 《또 다른 밤》(금호미술관, 서울, 2020) 등이 있다. 화이트블럭 레지던시(2021-2022)와 금호창작스튜디오(2018-2019)에 입주작가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