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오 Lee Sanoh, 변환깃 Eclipse Plumage, 2025, 캔버스위에 색연필, 파스텔, 안료, 혼합매체, 65.4 x 49 cm
© Courtesy of the artist
이산오 Lee Sanoh, 변환깃 Eclipse Plumage, 2025, 캔버스위에 색연필, 파스텔, 안료, 혼합매체, 65.4 x 4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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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Lee Sanoh, 양력 Lift, 2025, 캔버스위에 색연필, 파스텔, 안료, 65.2 x 9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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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Lee Sanoh, 가시깃 Blood Feather, 2025, 종이에 색연필, 수채, 먹, 파스텔, 안료, 91 x 116.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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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Lee Sanoh, 정지비행 Hovering, 2025, 도자, 유리, 혼합매체, 25 x 27.5 x 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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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오 Lee Sanoh, 아에로스 Aeros, 2025, 도자, 캔버스에 색연필, 혼합매체, 35.5 x 36 x 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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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오랜 세월 동안 비행 능력을 통해 무게로부터 벗어난 존재,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전령적 존재,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인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인간이 새를 동경하는 마음은 중력과 시간이라는 인식의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의 깊은 초월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과학의 언어로는 해석되지 않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상징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접근이다. 나는 상상의 새에 나 자신을 이입하며, 무중력 속으로 떠오른다. 이때 존재는 환상과 기형의 도상으로 확장되며, 찰나의 순간 속에서 무게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으로 비상한다. 이 철학적 비행은 실재의 중력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존재 방식의 가능성을 연다.” – 이산오 작업노트 중(2025)
드로잉룸은 2025년 올해의 신진 작가로 이산오를 선정한다. 매해 한 명의 신진 작가를 선정하여 개인전을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산오는 평면 회화와 도자 조각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선보인다. 이산오는 동양화와 도자를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낸다. 조모의 별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작가가 많은 것을 시작한 ‘새’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문학적이고도 영적인 작업으로 펼쳐진다. 매끈함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디지털과 극단에 있는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공존하는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보여주는 삶과 죽음, 중력과 무중력, 비상과 추락, 환상과 기형의 경계 사이에서 우리는 존재와 삶의 경로를 탐색한다.
이산오의 작업은 존재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죽음은 육신에 내재한 영이 우리의 곁을 떠나는 것임을 살갗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산오는 죽음을 생의 종말이 아닌, 존재의 생애 주기에서 자연스레 다가오는 과정 중의 하나로 인식한다. 작가는 전작들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이어주는 전령으로서의 새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서는 새의 구조적 이미지에 더욱 주목한다. 이산오의 회화에서 보이는 색연필과 같은 건식재료의 파슬함, 조류의 비행 혹은 군무를 연상케 하는 궤적의 이미지, 유기체가 갖는 대칭의 모습은 작가의 작업이 새에 대한 생리학적 관심에서 기인하였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조류의 날개를 떠올리게 하는 질감과 형태는 새가 가진 비행 조건의 자연적인 상태이자 인간이 지향하고자 하는 균형 감각을 일깨운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변환깃’은 오리와 같은 특정 조류에게서 드러나는 특징이다. 작가는 야생동물센터에서의 활동 경험으로 새와의 물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화려한 깃털로 생존을 도모했던 수컷 오리는 번식기가 끝나면 화려한 깃털 대신 수수하고 보호색에 가까운 상태로 깃갈이를 한다. 작가에 따르면, 일부 조류는 이 시기 동안 비행에 주요한 깃털이 동시에 빠지며 일시적으로 비행 능력을 상실한다. 이산오는 이러한 새의 상태를 가리켜 “자신의 주요한 생존 수단인 ‘비행’을 스스로 유보함으로써 존재를 보존하고 갱신하기 위한 내면의 리셋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라며, “생명 주기 속 정지와 재생의 과정을 겪는 새를 존재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일종의 무중력 상태를 상징하는 존재”로 은유한다.
새의 삶에 있어 비행이란 존재 이유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것은 생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상태로도 볼 수 있다. 생의 주기 속에서 반드시 잠시간 멈추어야 하는 것이 비단, 조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시 《변환깃》을 통해 우리는 삶의 경로를 재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잠시 간의 멈춤이 오히려 삶의 시간을 지속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글 민지영
이산오(Lee Sanoh, b.1996)는 세종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도예로 석사를 취득했다. 개인전 《창백한 언어들의 섬》(무목적, 서울, 2023)과 《기도하는 마음처럼 설명할 수 없는 것들》(What artist do, 서울, 2022)를 개최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황금화살》(TINC, 서울, 2024), 《메신저의 신비한 결속》(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2024), 《Vitarium》(신한갤러리 역삼, 2023, 서울), 《경험의 아치》(갤러리 인 HQ, 서울, 2023), 《음-파》(별관, 서울, 20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