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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없다. your absence

표영실 개인전


2021.06.22() - 07.24()​




인스타그램이 작가의 도록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 사람들은 SNS의 화면 속, 작가의 이른바 간지나는 분위기, 재현적인 테크닉, 솜씨들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림의 본질은 그것을 넘은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그림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표영실 작가를 안 것은 2014년 전시를 통해서였지만 이후로도 세 번의 크고 작은 전시들을 함께 하면서 ‘깊이있는’ 만남을 가졌다. 그는 만날 때마다 늘 차분하고 조용한 어투로 조곤조곤 말을 한다. 혹자는 작가에게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지속시킬 수 있는지 묻고는 한다는데, 그의 단정함, 그리고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한 가지 일만을 조용히 해 온 그의 진득한 성격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연약하지만 단단한, 눈으로 ‘만지는’ 세상

그는 늘 사소한 것, 일견 지나쳐 버리는 감정들과 같이 형상이 없는 것에 형상을 만들어주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보고 싶다. 세세한 감정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 힘이 들더라. 그래서 그것들을 끄집어 내어 화면에 두면 안심이 되곤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작가는 세상의 주변에 서서 주목 받지 못하는 감정들을 보듬는다.

노력과 쓸모, pencil and watercolor on paper, 38x28cm, 2021

표영실은 화려한 작업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지도 않고 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그의 눈으로 ‘만지는’ 세상은 비가시적, 비결정적이다. 희미하게 그려진


형태는 훅 불면 사라져 버릴 것처럼 연약하고, 모자란 듯 깊은 심연을 드러낸다. 편한 듯 결코 편하지 않은 그의 그림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연약하고


소심하여 외면당한 상념들, 감정의 앙금과 기억의 편린들로 채워진다. 작가는 감정들이 화면에 온전히 보일 때, 즉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이른바 잘근잘근 씹어서


다 소화가 되면 심각한 기분도, 힘든 감정들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그런 것일까? 연약하고 깊은, 비어있는 공간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의미와 단단함을 지닌다.




너와나, pencil on paper 28x38cm, 2021

감정들, pencil and watercolor on paper 28x25.3cm, 2021

시간을 견뎌낸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마음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림이 곧 그가 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작년에 전시를 위해 작가의 작업실을 오가며 여러 편의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 작가의 작업실은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고, 선 하나를 긋는 것 조차도 허튼 과정이 없었다. 같은 색깔 하나도 물감 제조사의 차이를 기록한다. 작품에는 붓질의 흔적 하나 없이 매끈하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이외에는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자, 거침없이 “정리와 청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루틴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힘든, 일종의 강박이 만들어 낸 취미 아닌 취미다. ‘정리’라는 일종의 자기수행을 통해 얻은 철저하고 단단한 심지가 이러한 작은 행위 하나, 공간의 배치에서 드러난다. 그가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희미한 형상과 색상은 이러한 작가의 내면과 행위가 합해져 오히려 세심함과 깊이감 있는 화면으로 전환된다. 독일의 미술사가 막스 프리들랜더(Max J. Friedländer)는 “미술가의 마음 속 깊은 곳은 한결같으며, 절대 상실할 수 없는 어떤 것이 항상 그 미술가의 표현으로 드러난다”고 얘기했는데, 이는 표영실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어른, oil on canvas, 100x72.7cm, 2021

웅덩이, oil on canvas, 145.5x111.7cm, 2021

작가가 드러내는 대상의 희미한 형상에는 앞에서 언급한 여타의 재현적인 테크닉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작가의 깊은 곳에서 정리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마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보는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표영실의 작업에는 이렇듯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표영실의 그림이 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시간을 견뎌낸 작가만의 지혜가 스며있다. 수많은 슬픔과 기쁨, 그리고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 자기만의 자리를 찾은 자의 모습이 아닐까.

_이승민 에이라운지 대표 전시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