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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하는 로봇청소기는

오늘도 거실 지도를 만들어

활보한다.


최모민

2022.09.21(수) - 10.15(토)​





그리고 흘러내리는 거실지도는.


김맑음_미술비평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에서 벗어나는 것은 절대다수가 바라는 안전한 선택지, 위치와 크기에 따라 정확히 매겨지는 투명한 가격, 환금성 보장 등을 포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아파트 신화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택은 다수의 욕망에서 자신의 욕망으로 이행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 한국의 현대 건축은 옛 동네를 없애는 데는 익숙하지만,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고는 새 동네를 만들어본 적은 없다.”1

그렇게 홍제천 부근에는 새 동네인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은 편안한 삶을 안위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 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재개발 지구가 으레 그러하듯이 그전부터 많은 이들이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옛 동네에 대한 장면이나 기억은 지층 속에서나 남겨져 있을 뿐이다. 덮힌 과거의 지층보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이루게 하는 것에는 여러 조건이 있다. 볕이 잘 들어올 것, 아늑할 것, 정리될 것, 물이 새지 않을 것, 이는 모두 빛과 물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를 제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누수와 응달로 생긴 곰팡이 자국은 쾌적함을 넘어 사회적인 위치를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그 제어는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외부의 자연적인 요소를 어떻게 실내와 완벽하게 단절시킬지가 관건이다. 재개발 지구에서 아파트까지의 흐름은 곧 외부 환경의 영향에서부터 점차 단절되고, 밀봉되고, 밀폐되는 과정이다.



빗물을 받는 잔들, oil on canvas, 100.5 × 80cm, 2022


2014-2015년 즈음 홍제천 부근에 위치한 할머니의 집을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주변 재개발 지역의 밤풍경을 그렸던2 최모민의 화폭에는 늘 배경에 외부 풍경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거나, 얼음이 생겨 있거나, 혹은 움직이지 않더라도 건조한 바깥의 공기가 느껴지는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이 전시《내가 애정하는 로봇청소기는 오늘도 거실 지도를 만들어 활보한다.》에서는 그러한 바깥 공기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방인들이 서로 마주칠만한 장소로 흔히 일컬어 졌던 도시의 그 냄새말이다. 이방인들이 서로 이방인으로 만나게 되는 이 상황은, 늘 등장과 사라짐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들의 만남은 “과거가 없는 사건, 또한 대개의 경우 미래가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 다음 번으로 미루는 법 없이 이야기가 시작된 바로 그 현장에서 지체없이 완결되는 이야기, 자기 배에서 줄을 뽑아내 만든 거미줄을 온 세상의 전부로 아는 거미처럼”3 말이다. 이방인들은 서로에게서 적정한 거리를 두고 오가며, 각자의 거미줄이 서로 닿지 않게 예의주시한다. 이러한 도시의 특징은 실내로 들어가면서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 밀봉되어 온습도가 조정되는 공간은 그 쾌적도를 따라서 최대한의 안정성을 추구하게 된다. “현대의 일상 속에서 현대적 공간 안에서 현대적 사물에 의해 우리 몸은 직조된다”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현대의 아름다운 삶”에 살고 있다는 작가노트의 한구절은 바로 이러한 밀봉의 안정감에서 발화된다고 볼 수 있다.


빗물을 받는 마룻바닥 위의 잔들, oil on canvas, 91 × 65cm, 2022

하지만 이제 그의 작업에서는 바깥의 건조한 공기 대신 습기가 차있다. 밀봉되어 쾌적함에 대한 열망은 습기로 인해서 물방울이 되어 맺히고 흘러내린다. 빗물은 떨어져서 웅덩이로 고이고 넘친다. 유동성uidity을 가진 이것은 복수형이 되지 못하고, 합쳐지거나 혹은 나눠지는 것으로 구분되면서 시간을 드러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나 응고된 상태를 보여주는 얼음과 다르게 이 유동성은 공간을 흐르면서 눈으로 시간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이 나뉘게 된 시점은 근대Modernity의 시작을 알리는 표식이기도 하다. 시간은 그 운반능력으로 역사를 가지게 되었고 공간을 통과하고, 가로지르면서 정복하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가진 속도는 이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근대적 도구의 능력을 판단하는 지표가 된다.4 공간을 정복하는 것은 더 빠른 기계를, 가속화된 움직임은 더 넓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5



거실 바닥에 스며든, Oil on canvas, 117 × 80cm, 2022


근대를 액체 시대로 본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금 시점까지 이어진다고 가정한다면, 이방인들이 서로 간의 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모습은 바로 그 속도를 통해서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과 이어진다. 그리고 이 오가는 이방인의 모습은 ‘로봇청소기’를 닮아 있다. 이 로봇화된 청소기는 레이더를 통해서 근거리에 있는 장애물을 파악한 뒤 그것을 기반으로 그들이 가려는 미래의 길을 측정하는데, 집안에 있는 물건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가장 최소한의 동선에 따라 이동한다. 정확하게 이 미래는 긴 기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청소를 목표로 이동하는 하나의 루트 안에서의 짧은 미래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거실 지도는 마치 거미줄처럼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재개발 지역에서 아파트 실내까지 동일한 지역인 홍제천의 환경을 경험한 작가는 이 거실 지도를 다시금 흐트려놓는다. 여기에서는 빗물과 촛농과 같이 직접적으로 유동하고 흐르는 것들이 등장한다. 이 등장으로 인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각자의 거미줄을 가진 실내 풍경은 흐르면서 흐트려지고 뒤섞인다. 목적지가 있는 지도의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믹서기와 나, oil on canvas, 65 × 53cm, 2022


개연성이 없거나 꿈 속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액체의 시대, 우리는 시간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사회를 경험하고, 빠른 속도로 짧은 시간을 확보하고 넓은 공간을 정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우리는 모두 흐르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밀봉되어 있는 공간에서 많은 이들은 그 유동성이 감소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파도 위에 떠있는 부표에 적응하여 흔들림을 잠시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 지상으로 다시 발을 디뎠을 때 그 흔들림은 이내 크게 다가오지 않았는가. 로봇청소기가 거실 지도를 만들어 활보할 때, 이 전시는 부표 주변에 있는 흔들리는 물결을 다시 밀봉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한다. 공간에 식물처럼 안착해 있는 이들은 이내 다시 흔들림을 감각하고 그 흘러내림을 마주할 것이다.



1 박정현, 「탈성장시대의건축―유토피아」, 『아키토피아의실험』(서울: 도서출판 마티, 2015), 237-238.

2 《요괴생활》(2021.9.14.-10.15., 아웃사이트) 전시도록.

3 지그문트바우만, 『액체현대』, 이일수옮김(서울: 필로소픽, 2022), 201-202.

4 앞책, 47-48.

5 앞책, 232-233.


나의 실수들, oil on canvas, 38 × 46cm, 2022


젖은 커튼 뒤에 남자 , oil on canvas, 73 × 50cm, 2022